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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삼라만상 그리는 화가 오경환 개인전
사유 통해 우주를 본다



윤필암을 그린 작품 앞에서 자리를 잡은 오경환 화백.
‘난해하다’ ‘추상적이다’ ‘절묘하다’ 다양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며 평생 ‘우주’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 ‘우주 화가’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오경환(65·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씨. 오작가의 회고전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열리는 세종로 일민미술관(02-2020-2055)을 11월 2일 찾았다.

미술관 1층에서 만난 오경환 작가는 소탈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전시 작품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마자 속사포 같이 쏟아내는 말들에서 작품에 대한 정열과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초기작에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120여 작품이 전시돼 오경환 작가의 40년 작품세계를 한눈에 아우를 수 있게 한다. 같은 시기 안국동 갤러리175(02-720-9282)에서도 다양한 소재의 일상 소품 위주의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우주를 그리는 화가’하면 단번에 떠오를 정도로 ‘우주’를 주제로 평생을 작업한 오경환 작가. 어릴 때 본 검푸른 우주를 배경으로 한 만화는 그의 일상을 뒤흔들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큰 울림은 평생 그를 우주 속에 빠져들게 했다.

오경환 화백에게 우주는 현실이자 그의 작품 세계이다.
오경환 작가가 우주를 향해 사유하고 관조하고 그들의 상관관계를 풀어나간 작품들은 일민미술관 3개 층을 가득 메웠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가 40여 년 간 천착해왔던 ‘우주’와 그가 여행하면서 만났던 ‘일상’을 그린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우주공간을 표현하거나, 가벼운 느낌의 수채 풍경화 등은 신비로움과 중후함을 동시에 풍긴다.

3m가 넘는 캔버스에서부터 찻잔의 종이받침, 편지봉투,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종이에 그린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는 캔버스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그의 창작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올해 8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정년퇴임을 앞두고 거제도 장승포에 작업실을 차렸다.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몰려드는 파도와 바닷가에 내려앉은 물안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해에 이르기까지 밤을 세워가며 그림에 몰두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바다, 환상’ ‘천공-안개’ ‘일출’ 등은 요즘 작가가 푹 빠져든 ‘우주’와 ‘일상’의 만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주와 자연을 담은 거대한 그림 곁에 일상을 그린 자그마한 캔버스가 나란히 걸려 끝없는 우주와 유약한 인간의 존재를 대비시킨 2부작으로 완성된 것이다.

오른편에 위치한 작품 유천은 삼라만상의 세계를 왼쪽의 작품 스페이스는 까맣게 가득찬 공간을 그렸다.
“하나의 사물은 전 우주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일체만물은 서로 형제이고 우리는 우주의 자식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생을 금한 것도 모든 만물이 형제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와 일상의 연결고리를 그림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가 자연과 일상의 조화를 시도한 작품들에 대해 평론가들은 추상과 구상의 만남을 시도했다고 평한다. 그러나 오경환 작가는 자신의 그림은 “구상과 구상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우주는 절대 추상적이지 않은 리얼한 현실 그 자체라는 것. 어려서 만화에서 접했던 우주는 이제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고 그 현실 속 우주는 그대로 그의 작품 안에 녹아들었다.

그의 작품을 지탱하는 모티브는 우주와 함께 여행이 한 축을 담당한다. 그에게 여행은 별과 별을 쫓아다니며 사유하는 시간이다. 도시화 현대화로 하늘 볼 시간을 뺏긴 도시인들에게 별을 찾아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밤하늘의 보석 같던 별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던 그 정서를 그림에 담았다.

우주를 관조하다 보니 불교의 세계관과 철학에도 푹 빠져들었다. 그는 우주에서 상응과 상관, 공허를 본다. 모든 것은 서로 상관관계로 얽혀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불교의 연기(緣起)이자 공(空)이다. 이 같은 그의 사상은 작품 ‘유천(流天)’에서 잘 드러난다. 붉게 소용돌이치는 ‘유천’은 바로 삼라만상의 세계이다.

오경환 작가는 불교 미술의 현대화를 위해 꾸준히 고민해왔다. 한때 단청도 연구하고 현대적 불화를 그리기도 했다. 71년 제2회 불교미술대전에서 입선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심사위원만 6차례 역임했다. 또 동국대에서 20년간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는 불교회화의 현대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원력을 내서 적당한 사찰을 우리 미술가들에게 맡긴다면 불교의 현대화 작업에 매진하겠다”는 오경환 작가는 “현대 건축으로 법당을 건립하고 현대미술가들이 시대를 담은 현대적인 불화를 그려 넣어 오늘 이 시대에 맞는 사찰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간절한 원을 내비쳤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의 전쟁과 평화를 그려낸 작품을 설명하는 오경환 화백.



오원배 교수가 본 오경환의 작품세계

생성, 소멸을 평생 화두로 작업



화가 오경환 선생은 우주를 사유하는 작가이다. 선생은 여행을 통해 작품을 구상한다. 선생이 여행을 다니는 것은 생각을 찾아 여기저기를 방랑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물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유’하느라 여행을 즐긴다.

여행다니는 지역마다 다른 사유가 있다면 그 각각의 사유를 바탕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오 선생의 작품에는 그렇게 여러 가지 사유를 펼쳐낸 다양한 스펙트럼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그런 우주를 진솔하게 담은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되는 것이다.

선생은 “어떤 때는 생각이 나지 않아 절망했노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게 평생을 생각을 찾아 여행하고, 여행지에서의 생각으로 우주를 바라봤다.

사유하는 것을 즐기는 오경환 선생에게 불교의 세계관은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생성과 소멸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해왔다. 일상에서 움직이다 보면 선생이 늘 말하는 생성과 소멸의 문제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생성됐다가 소멸된다.
이러한 생성과 소멸의 문제는 선생이 평생 화두로 쫓아다닌 것이다. 우주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세계이다. 선생의 작품은 이러한 불교적인 사유를 그대로 녹여낸다.
(동국대 미술학부 교수)
글=강지연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5-11-08 오전 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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