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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많이 훼손되기는 했으나 아직 이 땅에는 여러 곳 멋진 철새 도래지가 있다. 깊어가는 가을, 단풍도 좋지만 사람들은 그 철새의 군무를 보러 철새 수만큼이나 많이 그곳을 찾는다.
하늘을 덮는 몇 만, 몇 10만 마리 새 무리의 군무를 본 사람 가운데는 그 장엄한 아름다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다. 자연과의 혼연일치라 할까?
그런데 올해는?
어쩐지 꺼림칙하다. 조류독감이라는 복병 때문이다.
지난 1년, 가을 한철의 철새축제를 정성껏 준비해 온 도래지 현지인들은 그 꺼림칙함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철새가 다니는 길을 따라 조류독감이 퍼질 수 있다는 의심의 눈길이 행여 관광객의 발길을 끊을까 해서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철새 기피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철새를 보면 공포탄을 쏘아 보기도 하고, 이전까지는 철새 먹이라면서 자랑스레 일부러 남겨두던 곡식들을 지금은 철새가 벼이삭을 먹어치운다는 불만으로 변하기도 한다. 인근 닭, 오리 사육농가에게는 철새가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동물학자들이 조류독감은 철새 아닌 닭, 오리, 칠면조 등 사람이 사육하는 조류에서 발생하므로 철새 도래지가 위험한 곳은 아니라 주장하지만 꺼림칙함은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저 자연의 장관을 외면해야 할까?
에이즈 에볼라 사스 광우병 조류독감 등등 지난 세기부터 지구에 등장한 신형 바이러스는 전혀 신형이 아니고 태초의 생명 탄생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럼 왜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류 앞에 모두들 커밍아웃인가? 우리는 여기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인과율을 적용해 보아야 한다.
이들은 생명기원 때부터 삼림 속 원숭이 쥐 박쥐 등 동물의 자연 숙주로 그들의 체내에서 말썽 없이 공존해 온 생물이다. 오랫동안 밀폐 상태에 있든 바이러스를 환경파괴로 삼림 밖으로 끌어 낸 것은 다름 아닌 인류다. ‘환경파괴 있었으므로 신종 바이러스 뜨다.’인 것이다.
새로운 환경 속 생존을 위한 바이러스의 몸부림이 지금 신종 바이러스의 파괴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철새들이 사람들로부터 느닷없이 병원균 취급을 받게 된 것인데 일부 전문가나 학자의 주장처럼 ‘지나친 공포감 조성’이 만들어 낸 억울한 누명일 수도 있고, 호들갑스러운 인류의 변덕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다. 서산 천수만 등 철새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주최 측에서는 이미 일대에 소독을 마쳤고 바이러스 보유 가능성을 의심 받고 있는 조류 똥으로부터 관광객들을 보호할 준비도 해 놓았다 한다.
세계보건기구의 경고도 무시 할 수 없는 것으로 철저한 대비책이 따라야겠지만, 이 땅의 과객, 철새들이 앞으로 한달너머 펼쳐 보여 줄 그들의 비상이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야 말로 이 난세의 정신적 자양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