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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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스님은 근대한국불교의 율(律) 중흥조"
특별심포지엄 ‘근대한국불교 율풍진작과 자운대율사’에서 주장



자운 스님.
불교계 대표적인 율사 자운 스님(1911~1992)에게는 ‘근대한국불교의 율(律) 중흥조’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억불책에 위축되고, 일제 식민통치기에 일본불교의 침탈을 받으며 뿌리가 흔들리던 율의 전통을 크게 진작했기 때문이다.

자운율사의 뜻을 기리고, 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특별심포지엄 ‘근대한국불교 율풍진작과 자운대율사’가 자운문도회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원장 지관)의 공동주최로 10월 15일 서울 경국사에서 처음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인환 스님(前 동국대 교수), 철우 스님(파계사 영산율원율주), 묘엄 스님(봉녕사승가대 학장) 등 내로라하는 율사들과 종단 중진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 지관 스님, 종진 스님(해인총림 율주), 혜총 스님(부산 감로사 주지), 법혜 스님(동국대 교수), 무관 스님(前 조계종 총무부장), 태원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등이 자운 스님의 업적을 정리·발표했다. 발표 내용의 요지를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계율홍포 통한 교단정화와 승가화합

구한말 이후 승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일본불교에 의한 침탈과 타락이 심각했다. 이때 자운 스님은 교단을 정화하고 종풍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운영권과 종단의 재산 회복보다도 ‘계율수지’라고 봤다.

이를 위해 스님은 1948년 문경 봉암사에서 처음으로 보살계 수계법회를 열었고, 1953년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첫 비구계 수계법회를 가짐으로써 청정승가 회복의 기틀을 다졌다.

동산·효봉·성철·청담·경산 스님 등과 더불어 교단 정화운동을 주도한 자운 스님은 1954년 전국수좌대표자대회에 참석해 교단정화의 방향과 노선을 정하고 본격적인 정화운동에 동참했다. 정화 과정에서 승가 화합이 위태로울 때는 더욱 계율 엄수를 강조했다.

‘동일갈마(同一 磨) 동일설계(同一說戒)’ 즉 계내(界內) 전 비구가 모인 여법한 회의와 결의, 그리고 전원이 참석한 여법한 포살의식이야말로 승가의 화합이라는 율장의 가르침대로 자운 스님은 율장을 홍포하고 계율을 강설하고, 율사를 양성함으로써 궁극적인 승가의 화합을 도모했다.

계율홍포 차원에서 스님은 1951년에 한문본 <범망경> <사미니율의> <비구계본> <비구니계본> 등 5종의 율서를 2만5000권 간행했고, 이후 우리말 번역본 4만8000권을 간행했다. 또한 1951년 통도사에 천화율원을 설립해 출가수행자를 대상으로 율학을 강수했다.

●수계의식 정비

수계의식정비와 관련한 자운 스님의 대표적인 업적은 단일계단 확립과 이부승수계(二部僧授戒) 복원이다.

단일계단법은 각 본사나 사찰별로 율사스님들에 의해 시행되던 수계산림을 단일화해 종단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조계종 첫 단일계단 수계산림은 자운 스님을 전계사로 1981년 개최됐다. 스님은 총 12회에 걸친 단일계단의 수계산림을 통해 비구(니)계·사미(니)계·보살계·재가계를 정비했다.

이부승수계란 비구니가 비구니계단에서 계를 받고, 이어 비구계단에서 다시 계를 받는 것을 말한다. 율장에 따르면 사미니는 식차마나니(式叉摩那尼)의 6계를 받고, 비구니계를 배운 다음 삼사칠증(三師七證)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고, 다시 비구의 삼사칠증으로부터 인증적인 수계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아, 비구·비구니가 한자리에서 구족계를 같이 받아왔다.

이부승수계는 1986년 범어사에서 거행된 제7회 단일계단수계산림에서 처음 시행됐다. 이로써 율장에 근거한 수계의식 절차가 완성됐다.

●지계와 참회를 근본으로 한 염불수행

자운 스님은 지계와 참회를 근본으로 한 염불수행자였다. 스님은 해인사에 출가해 팔만대장경판전에서 1만 배를 올렸고,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1일 20시간씩 백일간 문수기도를 봉행하기도 했으며, 평소매일 수천 배씩 절을 하는 등 참회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매일 고성염불을 10만 번씩 예참했는데, 중국의 도작이나 선도처럼 아미타불명호만 부른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종자진언과 아미타불본심미묘진언 무량수여래근본다라니 등을 외우며 정진했다. 스님은 다른 불자들에게도 이같은 수행을 권했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국민 개개인의 업력이 공업으로 작용한 인과의 도리로 해석하고, 참회를 강조했던 자운 스님은 1951년 감로사에서 자비도량참법, 문수예참 등의 참법 수행을 통한 3000배 참회 법회를 시작했다.

자비도량참법이 한국에 전래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한국에서는 1106년 10월 고려 예종이 자비도량참법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들어서도 <상교(詳校)정본자비도량참법>이 여러 차례 간행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참법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자운 스님은 자비도량참법 보급을 위해 참법을 소개한 서적을 여러 차례 간행·유포했다. 자비도량참법은 해인사 홍제암을 비롯해 봉녕사 석남사 진관사 감로사 등에서 지금도 봉행되고 있다.


자운율사는 1911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927년 혜운 스님을 은사로 남천옹규 율사를 계사로 사미계를, 1934년 일봉경념(一鳳敬念)율사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만하승림(萬下勝林)-성월일전(惺月一全)-일봉경념-운봉성수(雲峰性粹)-영명보제(永明普濟)-동산혜일(東山慧日)-고암상언(古庵祥彦)-석암혜수(昔岩慧秀)로 이어지는 계맥을 전수했으며, 다시 종수·일타·지관·성우·철우·정행·인홍·명성·묘엄 스님에게 전했다. 1981년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화상으로 추대됐으며,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했다. 계율 홍포와 여법한 제도 확립에 공이 커 율 중흥조라 불린다.
박익순 기자 | ufo@buddhapia.com
2005-10-25 오전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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