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장 인묵 스님을 중심으로 7명의 스님들이 나한대재 의식을 진행했다.

10월 22일, 영천 은해사(주지 법타) 거조암은 고려말 이래 700년동안 단절됐던 나한재를 복원 봉행했다. 거조암은 정법의 시대에는 불교를 지키고, 말법의 시대에는 불자들의 복전이 되어 열반의 과보를 얻게 했다는 나한 사상이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혼란한 시기에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른 아침, 거조암은 오색천이 쳐지고 영산전앞에 단상이 차려졌다. 이 뜻깊은 행사에 동참하기위해 몸과 마음가짐을 정갈히 한 전국 불자들의 발길이 526위 나한이 모셔진 영산전(국보 14호)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오전 10시, 영산전 앞에서 자비화 평화를 위한 거조암 나한대재가 봉행됐다.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지안 스님, 은해사 부주지 선광 스님, 손이목 영천 시장 등 700여 사부대중이 경내를 가득 메웠다. 이날 행사는 법회, 작법의식, 축하음악회 등 3부로 진행됐다.

승가대학원장 지안 스님은 법요식에서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히 수행해 부처님처럼 번뇌를 여의고 해탈 열반에 이르러 맑은 정신세계를 누리게 된 분들이며, 오탁악세라 일컫는 요즘, 인류사회 맑힐 수 있는 모범이 나한 정신을 본받자는 슬로건 속에 있다”고 법문했다. 스님은 “나한처럼 한 생각을 맑게 할 수 있는 고귀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나한의 수행을 본받는 고매한 생각이 어둠 속의 빛이 되어 이 도량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한대재를 주관하는 거조암 원주 현소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고려이후 오랫동안 단절됐던 나한재를 재현함으로써 국운이 융창하고, 국난이 극복되며, 백성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3번의 범종소리가 울리자 장애와 마구니를 범접 못하게 하는 신중작법과 부처님전에 공양올리는 상단권공이 이어졌다. 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장 인묵 스님을 비롯해 한암, 성마, 수연, 법천, 동한, 행범 스님이 진행했다.

나한 대재의 하이라이트는 나한육법공양이다. 526위 나한 한분한분에게 향, 등, 꽃, 과일, 쌀, 차 등 여섯가지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현암 다례원(원장 권영숙) 불자들과 거조암 다도회원들이 부처님께 육법공양을 올린 후 나한육법공양이 이어졌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성자를 뜻합니다. 나한을 응공, 응진이라고 부르는데 응공은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라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라는 뜻입니다”나한육법공양이 이어지는 동안 사회를 맡은 승가대학원 한북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음 다례원 불자들이 부처님전에 차공양을 올리고 있다.

5백 나한의 오백이라는 숫자는 부처님이 열반 하신 후 부처님 생전에 설법하신 내용을 모아 정리하기 위해 모인 제자 500분을 말한다. 영산전에는 제1결집에 모인 500제자와 10대 제자 또 다른 16명의 제자(십육성중)를 더해 526분의 나한을 모셨다고 한다.

나한육법공양이 시작되자 정성껏 한복을 차려입은 불자들이 일제히 동참하면서 장관을 이뤘다. 저마다 손에 든 작은 공양 상에는 초가 밝혀졌고, 향이 피어올랐다. 또, 소담한 국화꽃과 쌀, 과(果), 차를 정성껏 올리고 영산전으로 들어갔다.

거조암은 신라 진평왕 13년(591)에 창건됐다. 따라서 거조암이 창건된 지 올해 1414년이 됐다. 혜림법사와 법화 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고 나한을 모신 이래 1400여 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민중들과 함께 해온 나한. 조금만 좋으면 헤죽됐다 조금만 섭하면 화를 내는 세인과 달리 700년 만에 벌어진 잔치에도 한결같은 천진면목이다. 정성스러운 공양상이 한분 한분 나한에게 올려지고 지극히 예를 다하는 불자들의 모습과 마음이 나한을 닮아간다. 영산전에 뚫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밝고, 나한의 표정이 유달리 해맑다.

육법공양을 올리는 불자들은 700년의 세월만큼이나 감회가 깊다. 또 제각기 모습이 다르듯 발원도 각양각색이다.
원주 현소 스님은 “소임을 맡은 이후 오직 성불할 인연을 짓기 위한 발원을 했을 뿐"이었다며, "참회하고 조금이라도 은혜에 보답할 길을 찾다가 700년간 끊어졌던 나한대재를 복원 봉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세인들의 시름을 묵묵히 듣고 맑혀줬을 나한. 고려시대만 해도 황실에서 나한대재를 봉행했다고 스님은 설명했다.

서울 방화동에서 왔다는 변영보(61)거사는 “그저 아라한 공부를 득해 아라한처럼 되고 싶을뿐”이라고 발원했다. 서울 구룡사에서 온 장갑인(72) 보살은 “세아들이 건강하고 잘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에 있는 해탈존자는 이미 이 마음을 일념으로 수용했을 터. 그저 히죽이 웃고 있다.

서울 분당에서 온 권미자(65)보살은 “부처님이 나 자신이니 나자신을 믿어야 하는거야”라며 부처님의 가르침 한 자락을 일러줬다. 우두커니 턱을 괴고 앉은 달명성 존자는 수긍하는 듯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하양포교당에서 왔다는 김상현(하양 하주초등 6년)군은 알뜰히 모은 용돈 2천원을 모든 나한에게 올릴 수 없어 안타깝다. 어쩔 수 없이 두 분에게만 대표로 올려야 하는데, 한 분 한 분 얼굴을 유심히 보며 고민이다. 상현군의 발원은 오직 하나. 공부 잘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동참 불자들이 한분 한분 나한에게 육법공양을 올리고 있다.

나한육법공양을 주도했던 현암다례원 권영숙 원장은 누구보다 감회가 특별하다. “지회를 열고 첫 행사였다”는 권회장은 “이렇게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고 오직 부처님 전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위해 두 달여 준비했다”는 권회장은 “오늘 육법공양은 특히 땅과 하나 되어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땅에 백포를 깔고 행다를 하는 백포행다를 시연했다”고 밝혔다.

행사에 도우미로 참석했다는 대구 원정차회 감로수팀 최무진여(43)보살은 “고3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고, 나한대재가 해마다 이어지길” 바랐다. 포항 효자동에서 온 고영필(57)불자는 “대한민국의 평화,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고, 모두 성불하기”를 기원했다.

“오늘 동참 대중이 이 자리에서 성불은 못하더라도 해탈 성불 인연이 지어지길 바랄뿐”이라는 현소 스님은 “나한대재를 영천시가 시축제 차원에서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여의치 않다면 3년에 한번은 앞으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에서 참여한 불자들의 모습 만큼이나 마음과 발원이 다르지만 결국 부처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곧게 이어가라는 뜻일까? 유난히 청명하고 매섭게 찬 날씨 속에 이어진 이날 행사는 유랑예술단의 가무악연주,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 수석 박은하의 쇠춤 공연, 인드라 예술단의 경기민요, 풍물 등으로 오후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