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조선시대 23
한재(寒齋)의 드높은 차 정신이 펼쳐진 후 350여 년 동안 우리에게 이렇다할 다서 하나 없는 실정이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다산이 썼다는 <동다기>가 나왔으나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소실되고 말았다. 이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만보전서>에 나오는 <다록>을 옮겨 적은 <다신전>이 나왔으니, 차의 가장 보편적인 이론이 보급된 셈이다. 이어서 초의 선사의 <동다송>은 대부분 기존 다서의 중요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지만 말이 부분의 내용은 우리 차의 장점과 올바른 차정신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 차문화상 중요한 작품이다.
한편 새로운 정신과 학풍이 펼쳐지면서 여류와 서얼 및 평민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차생활에는 부용당, 죽서당, 금원당 등이 등장한다.
중국의 차의 생산, 수출이 주요 정책이었으니 외교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일본은 비로소 옥로(玉露)가 개발되었다.
① 진작의궤(進爵儀軌): 차를 올리는 다정(茶亭)이 주정(酒亭) 옆에 설치되고, 연회 중간에 차를 올리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또 각색다식(各色茶食)이며 삼색다식도 들어 있다.
② 금령(錦舲) 박영보(朴永輔)가 쓴 글이다. 그는 차를 좋아해서 신위(申緯) 신헌(申櫶) 초의 등과 교유했다.
③ <다신전>은 <만보전서>에 실린 명나라 장원(張源)이 쓴 <다록>을 옮겨 쓴 것으로 저서로 보기는 어렵다. 차 특히 산차(散茶)에 관한 기초적 내용이므로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보아둘 책이다.
④ 최한기가 쓴 책으로 차와 차탕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⑤ <부용집>에 시 200여수가 실렸고 다시고 몇 수 있다.
⑥ 금릉(강진의 옛 지명)의 월출산에서 났던 차로 다산이 가르친 제다법으로 만들었으며 가로 6cm, 세로 15cm의 종이 봉투에 붉은 상표를 찍었다.
⑦ 해거도인 홍현주의 청으로 만든 송(頌)이다. 끝에 우리 차의 우수성을 강조한 것이 이채롭다.
⑧ 금원당 김씨(1817~?): 김덕조의 소실로 <호동서락기(胡東西洛記)>를 썼다. 운초, 죽서 등 여류문인들과 시문을 즐겼으며 다시가 전한다.
⑨ 임점매(1821~1868): 대만 차인으로 문인들의 차생활이 좀더 활기차도록 유도하고 ‘잠원음사(潛園吟社)’를 만들어 많은 문인들이 모였다.
⑩ 완복(阮福)이 쓴 것으로 보이차에 관한 다사(茶事)를 기록했다.
⑪ 손동원(孫同元)이 쓴 글로 하권에 자신이 담배와 술을 끊고 차를 좋아하는데 용정차가 색향미에서 뛰어나다고 썼다.
⑫ 여간신: 청대 다상(茶商)으로 홍차 제법으로 차를 만들었다. 기문(祁門)을 중심으로 크게 성공해 기문홍차의 명성을 얻었다.
주문치: 청대 대상으로 성격이 곧아 거짓말 할 줄 몰랐다. 20여 년간 다상으로서 노력했으나 많은 손해를 보았다. 골동품을 좋아해 수집품이 많았다.
⑬ 황본기(黃本驥)의 저술로 호남의 세공 차 양과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종을 기록했다.
⑭ 문인으로 그의 저술에서 매다옹(賣茶翁) 고유외(高遊外)의 차생활을 비평했다.
<한국>
1827 진작의궤에 차를 올림 ①
1828 진작정리의궤
1830 남차병서(南茶幷序) ②
<다신전(茶神傳)> ③
<농정회요(農政會要)> ④
1831 일지암 지음
@ 부용당 김씨(芙蓉堂 金氏) ⑤
@ 월산차(月山茶) ⑥
1836 다산의 타계
1837 <동다송(東茶頌)> 완성 ⑦
@ 금원당 김씨(錦園堂 金氏) ⑧
1840 김정희의 제주 유배
<중국>
1821 임점매(林占梅)의 출생 ⑨
1825 <보이차기(普洱茶記)> ⑩
1828 차의 밀무역 엄금
1832 차겨루기(복건 지방)
1833 <영가견문록(永嘉見聞錄)> ⑪
@ 인도와 기술제휴
1838 임측서의 흠차대신
@ 여간신(餘幹臣), 주문치(朱文熾) ⑫
1845 <호남방물지(湖南方物志)> ⑬
<일본>
1822 매다옹다기도보
1824 전중학옹(田中鶴翁)
1826 뇌산양 ⑭
1836 옥로차 개발
@ 차의 외국 수출 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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