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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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맺은 인연
현대불교신문 연재 - 불자 신행수기


몇 년 전부터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관악산 등산을 하게 됐다. 등산을 다니던 어느 날부턴가 목탁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고 향내음이 몸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강렬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왠지 불교를 알고 절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동안 절에 다닐 기회가 없었는데, 때마침 아들의 대입 수능시험이 닥쳐와 간절한 마음에 기도를 해볼까 하고 동네에 있는 대원사를 찾아 갔다. 법당에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부처님 앞에 삼배만 드리고 수능 기도는 하지도 못한 채 황급히 절을 나섰다. 그렇게 절과의 짧은 인연이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딸아이가 사춘기로 인해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딸과의 대화는 단절됐고 집안에는 서먹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문득 대원사가 생각났다. 다시 절을 찾아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주지 도성 스님을 친견하게 됐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스님을 뵙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지만, 힘들어하는 딸에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스님은 내 마음속에 있는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딸과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딸을 위해 100일 기도를 해 볼 것을 권해주셨다.

혼자 100일기도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자신과 굳은 약속을 하고 해내야만 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기도라 생소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기도하는 법과 절하는 법 부처님 앞에 해야 할 행동, 불교에 대한 교리공부까지도 스님께서 자세히 알려주셨다.

100일기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번은 도무지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적이 있다. 그날 밤 같은 절에 다니시는 관음행, 관불심 보살이 꿈에 나타나 나에게 전화를 해줘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 다음날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관세음보살께서 바른 길로 안내해 주신 거라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꼭 108배를 해야만 기도가 아니라며, 절에 와서 삼배만 하더라도 성심껏 열심히 마음을 다스려서 한다면 천배를 한만큼의 진정한 기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스님 덕택으로 100일 기도를 마칠 수 있었다. 스님께서는 법회 날 여러 도반들 앞에서 100일 기도를 혼자 끝낸 것을 격려해 주셨다. 사실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100일 기도를 끝냈지만 마음은 무척 흐뭇하고 편안해졌다. 100일 기도를 마치고 스님께 자성심(自性心)이라는 법명으로 계를 받았다. 그리고 기도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에 힘입어 200일 기도를 시작했다.

그럴 쯤 수능 시즌이 다가와 다른 도반들과 수능 기도를 같이 시작하게 됐다. 이번에는 여러 도반들과 기도를 했기에 혼자 100일 기도를 할 때 보다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몇 일간은 힘들었지만 무사히 기도를 마칠 수 있었다.

300일 기도를 다시 시작하면서 스님께서는 1000일 기도라 생각하고 마음 조급하게 먹지 말고 하루하루 정진하라고 말씀하셨다. 1000일이라는 큰 숫자에 나에게는 너무 힘겨운 생활이 아닐까 생각하고 겁을 먹고 고민하던 중에 스님께서는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300일 기도를 시작하고 나면 오전은 내내 절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막막하기만 했고 다시 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함께 기도하는 도반들과 서로 더 열심히 기도하자며 마음을 다졌다. 서로가 화합하여 격려해주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해가며 300일 기도를 거의 끝낼 쯤, 몸이 무거움을 느끼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우리 아들 딸이 동자승이 되어서 스님을 뵈러 간다는 것을 못 가게 했는데 뿌리치고 가는 것을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아이들도 부처님의 자식으로 이끌어 주신 것 같다. 그 후부터 아이들도 모두가 마음이 편해지고 딸도 메이크업을 시작해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있다.

300일을 끝내고 400일 기도가 시작되었다. 사월초파일이 다가오기에 연등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으로 연등을 만들기에 연잎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서 만들었다. 연등이 완성돼 법당에 매달린 모습을 보니 모든 중생들의 시련과 고뇌가 함께 달려 올려지는 것 같았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시련과 고뇌가 하나하나 벗어 버려지고 희망이 달려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큰 보람이 느껴졌다.

연등 하나하나에 불이 켜지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불빛이 밝혀질 때, 바라보고 있는 가슴은 벅차오르고 말로 표현할 수없는 기쁨이었다. 기도를 같이 하고 함께 연들을 만들어 법당에 달아준 도반들에게 감사하며, 작은 포교원이지만 따뜻한 마음과 변치 않은 불심으로 도반들과 항상 함께 하고 싶다. 그곳에는 항상 엄격하시면서도 인자하신 스님이 자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5일에 군에 간 아들을 생각하며 만든 연잎은 연등이 되어 아들을 앞날을 밝게 비추어줄 것이다. 메이크업을 시작한 딸은 2급, 3급 필기와 실기 시험에 부처님의 가피로 합격하는 영광을 얻었다.

500일 기도를 시작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생활이 되었다. 나 스스로 행하면 이루어지듯이 열심히 기도하며 너무 많은 가피를 입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해 할 줄 알아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눈앞의 작은 이득보다는 앞을 보고 큰 것을 쌓아가는 숨은 노력에 부처님은 손을 잡아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내 큰 상처보다 다른 사람의 작은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불심을 키웠으면 한다. 중생이라 가끔은 힘들다는 생각도 들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지켜봐 주시는 스님과 도반들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격려해주시고 힘을 주셨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8월 18일 지장재일날 500일 기도를 끝냈다. 이제 기도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지만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 나의 작은 기도로 대원사가 신도 번창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복을 지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희정(서울시 영등포구 신길3동) |
2005-11-07 오후 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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