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선 그리고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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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리고 뒤로 던진 뒤에 절을 하니, 대수법진(大隋法眞) 선사가 시자에게 말했다. “저 스님에게 차 한 잔을 달여다 주어라.”
# 한 스님이 자복여보(자복여보)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밥 먹은 뒤에 차 석 잔이니라(飯後三碗茶).”
# 운암담성(雲岩曇晟) 선사가 차를 달이고 있는데 천황도오 선사가 물었다. “누구에게 주려고 차를 달이는가?” 운암이 대답했다. “마시고 싶어하는 한 사람이 있네.” 천황이 다시 물었다. “왜 그더러 스스로 달이라고 하지 않는가?” 운암이 다시 답했다. “마침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흔히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하는 것을 일컬어 ‘선문답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선사들의 대화는 일반인들의 잣대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가르침의 핵심이 담겨 있다. 이러한 선문답에 사용된 비유와 예시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들이 등장하는데, 차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위에서 살펴본 선문답들도 ‘차’를 매개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달마선사에서 육조혜능 스님에 이르는 중국 선(禪)의 황금시대에는 차와 관련된 일화와 화두가 많이 생성됐다. 선사들은 차를 달이거나 찻자리에서 차를 나누거나 차밭에서 찻잎을 딸 때도 법을 묻고 답했는데, 이때 차는 깨달음을 전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최초의 선종 사서(史書)인 <조당집>에는 차와 관련된 화두가 37개 나오고, <경덕전등록>에는 62개, <선문염송>에는 27개의 차 관련 화두가 전한다. 이는 당시 선승들에게 차 마시기가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반증해준다.
그렇다면 차는 화두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끽다거’ 화두로 유명한 조주 선사는 “말을 꺼낸다거나 손발을 꿈적거린다거나 하면 그 모두가 저의 그물 안에 떨어지게 됩니다. 선사께서는 이것을 떠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나는 점심을 먹고 아직 차를 마시지 않았다”고 답했다.
조주 선사는 말과 행동 언어를 떠나 ‘도’에 관해 말해달라는 어려운 주문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상사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했다. 이처럼 차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데 더없이 적합한 소재였다.
중국 선불교에서 차를 마신 선승과 선원은 마조 스님 이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마조 스님은 차를 화두 속의 중요한 소재로 활용해 ‘마조의 차 한그릇’이라는 화두를 남겼고, 이는 마조선사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가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선학(禪學)적 토대가 되었음을 밝혀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같은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기에 마조 선사는 ‘중국 선차의 연원’ ‘선조의 차 문화가 마조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칭송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널리 알려진 ‘끽다거’ 화두는 누가 제일 먼저 사용했을까? 흔히 조주선사의 대표적인 화두로 알고 있는 ‘끽다거’는 그보다 앞선 귀종지상 선사의 ‘귀종끽다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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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된 ‘끽다거’는 조주선사에 의해 꽃을 피웠다. 조주선사는 “일찍이 여기 왔던 일이 있는가?”는 질문을 던진 후 온 적이 있다고 한 사람이나 온 적이 없다고 답한 이 모두에게 ‘차나 마시게’라고 말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자가 “왜 와 본 사람이나 오지 않았던 사람 모두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느냐”고 묻자 조주 스님은 답했다. “끽다거.”
이 같은 끽다거 화두는 목주 진존숙의 ‘목주끽다’로 이어진 후 동산양개, 목주도명, 양기방회, 설봉의존, 법안문익 등 23명 선사들에 의해 27편의 다양한 끽다거 화두로 재탄생됐다. 끽다거 화두를 사용한 이나 그 배경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달랐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로 모아진다. 이처럼 ‘끽다거’는 한때의 일시적인 유행이나 방편이 아닌 선종의 역사와 더불어 면면히 전해지며 선의 진수를 보여주는 ‘선어(禪語)’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