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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그늘진 마음 음악으로 달래야죠
백혈병 아이들의 ‘노래하는 삼촌’ 주권기


주권기 씨가 지난해 광주 사직골에 개설한 통기타 카페.
광주 사직공원 ‘통기타 촌’에 자리한 카페 ‘작은 음악회’.

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 지역본부가 지정한 ‘아름다운 가게 3호점’이다. 이곳에서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마다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 돕기 나눔 콘서트’가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만 1년이면 1200명의 어린이가 소아암으로 고통 받습니다. 소아암은 불치병이 아니라 꾸준히 치료하면 완치됩니다. 어린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고 막대한 치료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마련한 작은 음악회입니다.”

백혈병 어린이돕기 거리모금에 앞장서는 주권기 씨.
소아 백혈병 아이들로부터 ‘노래하는 삼촌’으로 불리는 카페 주인장 주권기(37)씨. 그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통기타 가수이다. 그러나 본인은 ‘소아 백혈병 가수’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위해 노래 부를 때가 세상에서 가장 좋기 때문이다.

주씨가 소아 백혈병 아이들을 위해 노래 부르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다. 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 지역본부가 설립되면서 모금을 위한 거리공연을 요청받았다. 당시 카페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씨는 주저 없이 승낙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로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 있는 일이었다.

2001년 4월, 무등산 입구 문빈정사 앞에 간이무대를 설치하고 등산객을 향해 무작정 노래 불렀다. 산에 오르던 이들이 그의 노래에 고개 돌리면 ‘모금함’이 보이고, 설령 모금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소아암으로 힘들어 하는 환우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매달 소아 백혈병 환우를 1명씩 추천받았다. 무대에 오르기 전 먼저 합장하며 ‘소아암 친구들의 힘찬 생명’을 기원했다. 손가락이 곱아 움직이기 어려울 때까지 기타치며 노래했다.

“소아 백혈병 아이들을 위해 오르는 무대는 나를 있게 하는 원천적인 힘이고 생활의 일부입니다. 백혈병과 싸우면서도 구김살 없이 당당한 아이들을 만나면 제 자신이 부끄럽거든요. 이 아이들은 저의 소중한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루 종일 혼자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다. 저녁나절이면 목이 쉬어 대화하기도 힘들고 녹초가 되어 다음날까지 꼼짝없이 쓰러져 있기도 했다. 거리음악회는 회를 거듭하면서 주씨의 후배와 동료 음악인들이 하나 둘 동참하게 되었고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더불어 주씨의 활동영역도 더욱 넓어졌다.

각종 소아암 환우돕기 음악회는 물론 소아암 환우들의 생일잔치, 완치 축하모임 등 한달이면 5~6번을 소아 백혈병 친구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

토요일 저녁마다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돕기 콘서트가 열린다.
“언젠가 두 달 가까이 거리모금으로 치료비를 모았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아이가 수술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버렸더군요. 조금 더 빨리 치료비를 모았더라면 일찍 치료 받았을 텐데...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날 이후 소아암 모금을 할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우선 순위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씨가 소아백혈병 돕기 거리모금에 나선 것은 40여 차례, 20여 명의 소아암 환우들에게 약 8천여 만 원을 모아 전달했다. 주씨가 노래로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은 소아 백혈병 환우돕기 뿐이 아니다. 나눔콘서트를 비롯해 불우청소년돕기 음악회, 양로원, 독거노인 돕기 등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대학 때까지 그룹 활동을 하며 음악과 가까이 살았다. 그러다가 사회에 나가면서 노래를 접할 시간이 없어졌다. 노래가 없는 직장생활은 끔찍했다. 낙향을 반복하는 방황 속에 우연히 광주 관음사 청년회와 인연을 맺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빈 마음을 채우기에 넉넉했다. 반년 만에 청년회장을 맡게 됐고 두세 명에 불과하던 청년회가 20~30명으로 늘었다. 비결은 음악이었다. 법회가 끝나면 법우들과 차 마시고, 기타 치며 노래했다.

“노래하는 동안에는 어떤 잡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저에게 있어 음악은 곧 선(禪)이 되었어요. 함께하는 대중이 누구든, 어느 곳에 있든 노래 몇 곡이면 하나가 되잖아요”

포교에 음악만한 것이 없었다. 결국 음악을 좋아하는 법우들과 불교계 최초의 5인조 그룹사운드 ‘맑은소리처럼’을 결성했다. 주위에서 시끄럽다는 핀잔을 들으며 곰팡이 냄새로 코를 막아야 했지만 지하실에서 연습하던 그 때가 좋았다. 교계에 그룹사운드가 알려지면서 제법 유명세도 탔다. 서울, 부산, 대전 등 청년회 행사마다 초청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 그룹사운드는 후배들이 서울로 진출하면서 몇 개월 만에 해산되고 말았다.

어느 날 광주 무각사 청년회 창립법회에 초청되어 노래를 했다. 라이브 카페를 하던 법우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몇 군데서 노래를 청해왔다. 자연스럽게 밤이면 카페에서 노래하고 아침이면 직장에 출근하는 생활로 이어졌다.

가창력을 인정받으면서 출연요청이 늘어나자 뒤늦게 본격적인 가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음악엔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굳어 있거나 닫힌 마음이라도 함께 노래 부르면 금방 마음이 열리고 맙니다.”

주씨는 지난해 사직골에 통기타 카페를 개설했다. 소아백혈병 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가게’에 등록했고, 매상이 가장 많은 날을 골라 ‘아름다운 나눔의 날’로 정해 콘서트를 펼치고 있다. 나눔 콘서트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소아 백혈병 친구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였기에 날이 새는 줄 모른다.

“출연료를 받고 부르는 노래는 스트레스가 되지만 소아 백혈병 친구들과 함께 하는 노래는 마음부터가 편해집니다. 그러니 이것이 곧 극락 아닌가요.”
글=이준엽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2005-10-11 오전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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