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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천배를 마치고 큰스님을 뵙고 난 후 내가 궁금해 한 것들에 대한 답은 하나도 얻을 수가 없었다. 대신 심원(心源)이라는 불명과, 죽을 때까지 부처님을 예경(禮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대면한 스님의 느낌은 맑고 투명하고 청량했으며 미소 띤 인자한 얼굴에서는 형형한 눈빛이 나와 감히 거역할 수 있는 위엄을 느끼게 했다. 또한 오래되긴 했지만 너무나 정갈하고 단정한 옷매무새는 철두철미한 수도승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경심과 겸손함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었다. 기도 중에 스님께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던 얼토당토않던 질문들은 어느새 달아나 버렸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스님 얼굴만 쳐다본 채 서있던 나는 “기도 열심히 해라”는 스님의 한 마디만을 듣고 방을 나왔다. 그러나 스님을 뵙고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게 하는 큰스님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등골이 서늘하게 만드는 청량한 기운은 나의 영혼을 지배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솔직히 그동안 나의 꿈이라는 것은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 자식을 두세 명 두고, 사업이 잘되어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멋있게 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성철 스님을 뵙고 난 후 나의 가치관을 새롭게 세우게 되었고, 평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재정비하게 됐다. 그 첫 번째 수선가 일과기도 정진이었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께서 지도해 주신 기도법에는 삼천배기도 말고 아비라 기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또한 업장을 소멸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지금까지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스님을 뵙고 2개월이 지난 후 나는 여륜 거사와 함께 아비라 기도에 참석했다. 당시 거사들은 원통전에서 기도를 했는데, 겨울도 아닌 한 여름에 장작을 쪼개 아궁이에 불을 때 가면서 기도를 했다.
처음 하는 아비라 기도에 대한 긴장감이 나를 감쌌고 뜨거운 열기와 연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또한 방바닥의 열기는 너무 뜨거웠다. 나름대로 묘책이랍시고 박스를 구해 2~3장 깐 후 그 위에 덮고 자는 이불도 깔아 두껍게 만들고 그 위에서 기도를 했다.
사시예불과 함께 기도가 시작됐는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속옷은 물론 법복까지 흠뻑 젖었고 장궤합장을 한 다리는 마비되듯이 고통스럽고, 합장한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선배 도반들이 진언을 크게 외치라고 했지만, 아무리 진언을 하고 싶어도 뱃가죽이 당겨 내 의지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기도 시간인 30분은 너무나 길었고 혹시 시계가 멈춘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시간이 늦게 흘렀다. 제풀에 지쳐 포기 비슷한 감정이 들 때 쯤 죽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긴 숨을 토해내고 일어나서 3배를 하면 한 파트 기도가 끝난다.
한 파트 기도가 끝나면 25~3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갖는데 이때 능엄주를 일독한 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능엄주 일독을 하는데도 20분이 넘게 소요되었으니, 휴식을 취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고, 쉬는 시간에 맞춰 능엄주 정독을 하기에도 급급했다. 불현듯 ‘내가 이렇게 힘든 기도를 왜 왔을까’하는 회의감이 들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기도에 정진하고 있는 여륜 거사님에 대한 원망도 일었다. 한 파트 기도가 이럴진데, 나머지 23파트를 어찌 끝낼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예상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동차 키를 여륜 거사님이 보관하고 있었으니 해인사 백련암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또한 당시 백련암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기도 온 학생도 있었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도 계셨는데, 젊은 내가 도중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힘들어도 이번만 끝내고 가자, 설마 죽기야 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기도에 임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백련암의 첫날 잠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하기만 했다.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자야했고, 바닥이 뜨거워 잠도 깊이 들지 못했고, 유난히 씻는 걸 좋아하는 내 습관으로는 잘 씻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힘겨웠다.
둘째 날 기도가 시작됐다. 고정된 자세로 지탱하고 있어야하는 다리는 이미 마비되어 내 다리가 아니었고, 공양도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고 걸음조차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이틀째 기도가 끝났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힘이 들었지만, 저녁이 되니 언제 낮에 땀을 흘렸는지 모를 정도로 땀냄새도 나지 않고 뽀송뽀송한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후 7번째 기도에서 드디어 작은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프던 몸뚱아리가 갑자기 하나도 아프지 않으며, 기도하는 몸 상태가 아주 편안해졌고,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어도 뱃가죽이 당겨 지르지 못했던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 캄스바하’가 술술 나오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후의 기도는 거뜬하게 마칠 수 있었고 기도를 끝낸 후 스님은 나에게 ‘심원’이란 법명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불명을 주면서 스님께서는 “니 아비라 기도하면서 3일 째까지 욕 많이 했제? 다시는 아비라 기도 안올라꼬 마음도 먹고. 그래도 니는 심원이 무슨 뜻인고 알제?”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스님은 기도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훤하게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읽고 계셨다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느껴짐과 동시에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