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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운영 출ㆍ재가 함께 해야
창간 11주년 특집 - 재가 '구성원이되 대의원 될 수 없는 위상'


수행에는 출가 재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사진은 범어사 설선대법회에 동참한 사부대중.
【전문】‘종단은 승려(비구ㆍ비구니)와 신도(우바새ㆍ우바이)로서 구성한다. 하지만 중앙종회 의원 자격은 승랍 15년, 연령 35세 이상의 승려로 한다.’

조계종 종헌 8조와 33조항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묶어낸 내용이다. 재가자를 종단 구성원으로 인정은 하되, 종단의 입법기구인 종회 참여는 제한한다는 의미다. 세속적 잣대로 보면, ‘국민은 국민이되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국민’인 셈이다.

출ㆍ재가들의 공동체인 승가(僧伽). 오늘날 한국불교승가는 이처럼 승가공동체 정신과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있다. 사부(四部)대중은 종단의 주인으로서 평등한 관계가 마땅하지만, 현실은 출가 이부(二部)대중 중심으로 변모됐고, 복잡다단해진 현대사회 속에서 출ㆍ재가의 역할분담은 모호해졌다.

이 같은 현상이 왜 발생했을까? 출ㆍ재가의 불평등한 요소와 그 원인, 바람직한 출ㆍ재가 관계 모델 제시 등을 통해 진정한 승가로 돌아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율장에서 말하는 사부대중의 평등문제


출ㆍ재가의 평등에 대한 불교적 근거는 간단명료하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다. ‘모든 중생에는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이 선언이 바로 사부대중의 평등정신이 된다.
초기율장과 대승율장은 출ㆍ재가 평등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먼저 초기불교 율장에서는 출ㆍ재가의 평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다. 다만 출가자 삶의 방식만을 규정하고 있다. 출ㆍ재가에 대한 평등을 언급한 조항이 없는 셈이다.

각묵 스님(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은 “초기율장을 통한 출ㆍ재가의 평등문제는 아무런 근거 조항이 없어 논할 수 없다”며 “출가자는 재가자의 복전이 되고, 재가자는 재물의 보시로써 출가자를 외호하는 것으로 출ㆍ재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대승율장에서의 출ㆍ재가 평등에 대한 시각은 적극적이다.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다는 입장이다.

목정배 교수(대한불교법사회 이사장)는 “대승율장은 초기율장과 달리 한 번 귀의한 사람이 한 계목을 파해도 참회하면, 영원한 불자로 인정한다”며 “계목의 부분적 또는 전체적 실천 유무는 출ㆍ재가를 구분하지 않는 대승율장의 사부대중 평등정신에서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목 교수는 출ㆍ재가의 평등관에 대해 ‘출가자-재가자’란 용어부터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즉 ‘출가자-비(非)출가자’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가자는 출가를 못한 ‘미(未)출가자’가 아니라, 출가를 하지 않은 ‘비출가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평등’이란 이상과 겉도는 ‘불평등’한 현실


출ㆍ재가자 간의 불평등 문제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목 교수는 “초기불교교단의 보시관인 ‘사방승가물(四方僧伽物)’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즉 출가자 집단이 절 안에 보시물을 받기 시작하면서, 소유와 재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출ㆍ재가 사이에서 소유에 대한 갈등이 유발됐다는 지적이다.

박광서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는 “출가자 중심의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종권의 독점 문제는 출ㆍ재가자 간 불평등을 유발시키는 핵심 원인이 된다”며 “재가자들이 주장하는 종단 및 사찰 제정의 투명한 공개와 중앙종회 참여 요구 등은 출가자 위주의 운영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 교수는 또 출가자의 ‘느슨한 지계행’도 지적했다. 잘못된 방편을 오래 방관하면, 부패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엄격한 잣대로 과실에 대한 책임을 예외 없이 묻는 한편, 출가자의 출가정신을 계율로써 엄정히 검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역할분담’에 서투른 한국승가


목정배 교수는 출ㆍ재가 불평등의 핵심 이유를 ‘서투른 역할 분담에 있다’고 분석했다. 출ㆍ재가자들의 역할과 권한 등을 세밀하게 나눠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도자로서 출가자의 역할 상실, 현실적인 활동가로서 재가자의 열정 부족 등으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출ㆍ재가자들이 상시적으로 만나 이런 문제를 고민할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출ㆍ재가자간 간극이 넓어졌다고 목 교수는 설명한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손안식 상임부회장의 진단도 비슷하다. 출가자가 ‘머리’로서 역할을 충실하지 못했고, 재가자는 ‘손과 발’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손 부회장은 이에 대해 “출가자가 지도자로서 불교사상을 전달하면 재가자는 이를 받들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데, 정작 출ㆍ재가의 참여 폭과 활동의 완급 등을 조율하는 종단 내 공식 기구가 없었다”며 “출ㆍ재가가 격의 없이 종단 현안이나 사찰 운영 등에 대해 상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협의기구가 조속히 구성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출가자, ‘제한적 참여 동의’


이처럼 역할분담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의 출ㆍ재가들은 과연 종단 운영 참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먼저 출가자들은 재가자들의 적극적인 종단 운영 참여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과 활동영역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르다. 대표적인 경우가 재가자의 중앙종회 참여 부분이다. 현재는 재가자의 ‘제한적 종회 참여’에 동의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조계종 종회의원 보경 스님(서울 법련사)은 “재가자들의 종회 참여는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교단의 성격상, 참여 명분 자체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회는 승단 내의 내부구조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재가자들의 종회 참여는 시기상조”이라며 “다만 상ㆍ하원제로 종회를 구성한다면, 재가자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보경 스님의 이 같은 입장은 재가자의 종회참여 현실화가 출ㆍ재가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릴 소지가 다분히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또한 출ㆍ재가자의 종회 인원 비율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아, 종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될지 미지수라는 의견이다.

조계종 제25 교구본사 봉선사 주지 철안 스님도 마찬가지다. 재가자의 종회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동의는 하지만, 출가자를 대상으로 한 추천권, 선출권 등의 권리 행사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철안 스님은 “종회는 종도들의 입법기구, 대의기구로서 종단 현안, 타종단과의 교류, 정치ㆍ사회 상황 등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만큼 전문성을 갖춘 재가자들의 종회 참여는 필수적”이라면서도 “다만 종회 내 재가자들의 역할 제한은 필요하다. 신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차원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재가자, ‘단계적 종단 운영 참여’


재가자들은 출가자들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단계적 종단 운영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재가자의 현실적인 종단 운영 참여가 힘든 현실을 감안한 입장이다. 종단 내 특별위원회 구성, 출ㆍ재가 협의기관 설치 등이 대표적인 제안들이다. 이는 출가자가 맡을 역학과 재가자의 역할을 상호 논의와 교류를 통해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승가의 투명성(청정성) 제고’와 ‘재가의 전문성 확대’라는 화두풀기에 한 해법인 셈이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투명성 보장의 경우 재가자의 사외(寺外)감사제도를, 전문성 확보의 경우 종단 내 특별위원회 설치에 대한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재가자들은 △재가자의 인적 자원 개발 및 교육 △종단 내 환경 복지 미디어 인권 통일 국제연대 등 재가자 참여 특별위원회 설치 △재가자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출가자의 인식전환 등이 현실화돼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각묵 스님은 “출가자 중심의 종단 행정을 재가자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가자는 법과 율을 실천해 재가자의 사표가 되고, 재가자는 출가의 외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재가자를 종단 내 인간관계로만 이해해서 안 되고, 사회인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재가자의 한 발은 사회에, 한 발은 교단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것을 각묵 스님은 강조한다.



▶출ㆍ재가 평등 모델은?


재가자의 종회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천태종과 출ㆍ재가 구분 없이 수행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공주 학림사가 대표적이다.
우선 1967년 창종 초부터 재가자들의 종회 진출을 종헌에서 규정한 천태종은 재가자의 종회 의원 자격 요건으로 ‘교도 중 30세 이상, 입교 5년 이상인 자’로 재가자 종회의원을 선임하고 있다. 현재 재가자 의원 수는 전체 30여 중 10명으로, 총무ㆍ재정ㆍ국제ㆍ법제 등의 4개 분과위원회별로 활동 중이다. 특히 4개 분과위원회 가운데, 재정분과위원장은 재가자 종회의원이 맡고 있으며, 창종 당시부터 5년전까지 재가자가 종회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재가자 종회의원은 종정 스님의 선임 방식으로 선출된다. 4년의 임기가 종료될 경우, 출ㆍ재가들이 동수로 참여하는 종단 내 종회의원전형위원회를 구성, 2배수의 종회의원 후보자를 종정 스님에게 추천한다. 후보자들은 대부분 신도회 간부 출신으로, 법조계ㆍ학계ㆍ교육계 등의 사회 경험이 풍부한 신도들이 추천된다. 선임 기준은 종단 공헌도, 사회 경험, 애종심 지역적 안배 등을 고려해 종정 스님이 선임한다.

천태종 종회 박노성 부의장(법제분과위원)은 “재가자 종회의원의 활동의 특징은 출가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입법 활동을 펼친다는 점”이라며 “종단 예ㆍ결산 심의, 종헌ㆍ종법 개정, 종무행정기관에 대한 종무감사 및 종책 질의 등의 활발한 의정 활동을 벌여, 재가자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출ㆍ재가가 함께 수행 공동체를 만든 공주 학림사(조실 대원)는 출ㆍ재가자 수행처를 한 도량에 두고 있다. 수행에는 출ㆍ재가의 구별이 없다는 선원 가풍 때문이다. 수행은 출가자가 100일간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며, 재가자는 1개월에 한번 1주일 철야참선정진을 하고 있다. 출ㆍ재가가 서로 경책이 되면서 수행열기를 북돋우며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점검은 수시로 빈틈없이 이뤄진다. 또 출재가의 구분이 없다. 먼저 화두가 없는 사람은 3천배를 회향한 다음에 화두를 받게 하고, 화두가 있는 사람은 108배를 하게 한 다음 공부점검을 해준다. 어느 정도 공부가 무르익은 사람은 평소에 의심나면 절을 생략하고 바로 점검해준다. 보름 단위로는 전체 대중의 공부를 일괄적으로 점검하기도 한다. 방식은 1:1. 시민선원 50여명, 출가자 10여 명이 대원 스님에게 공부점검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김철우 기자 |
2005-10-08 오전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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