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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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권력화ㆍ세속화 만은 막아야
창간 11주년 특집 - '힘과 잇속' 따르면 불교 아니다


【전문】 불교의 삼보 중 하나인 ‘승보.’ 스님들의 모임인 승단이 불보, 법보와 함께 존경과 귀의의 대상이 된 것은 역대 큰스님들이 보여준 치열한 수행력과 지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사회가 급격히 붕괴하는 20세기로 접어든 이후 스님들의 이런 위상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정보화와 세계화 등을 통해 현대사회의 변화가 급속히 일어나면서 속세와 단절한 채 수행에 몰두하는 ‘수행자’로서 스님과 수행과 교화를 함께 하는 ‘성직자’ 사이의 경계가 매우 빨리 무너지고 있다.
그 가운데 종교가 정치권력의 들러리를 서거나 이권사업에 개입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비판도 낯설지 않는 상황이다. 불교계는 세속화 권력화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대안은 무엇일까?



#불교가 제3의 권력?


중앙종회 등 종단기구들이 권력다툼을 지양하고 불교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천성산지킴이’ 지율 스님이 천성산 관통터널 건설계획 철회를 주장하며 100일간 단식정진을 벌이던 지난 2월. 이 사건과는 별개로, 그 무렵 네티즌 사이에서는 ‘종교의 권력화’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환경보호와 인권운동을 위해 종교단체가 힘을 모아 정부와 기업 등 ‘거대권력’을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한국불교가 불사 등 내부문제는 덮어둔 채 숫자의 힘으로 정부와 기업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논쟁과 관련된 댓글이 인터넷 토론방을 달구었고 그 결과 지율 스님을 반대하는 ‘안티지율’ 사이트가 생겨나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민주화가 진행되며 사라져간 독재정권을 대신해 새로운 권력들이 생겨나고 있다. ‘삼성공화국 신드롬’을 일으킨 기업권력, 속칭 ‘밤의 황제’로 칭해졌던 언론권력, 시민들이 만든 ‘시민단체’들도 우리사회의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중 종교단체들은 강한 응집력을 가진 신도조직력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교권력 개혁은 진행중


불교계는 50~80년대 타율적인 ‘정화’와 각종 법난을 정치권력에 희생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 결과 94년에 일어난 ‘종단개혁’은 불교 안팎을 향한 ‘독재 권력지향’에 맞서기 위해 벌어진 민주화 대중운동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불교계는 외부의 권력과 내부적인 권력지향에 맞설 만큼 필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그 가운데 한국불교가 제3의 권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 원천에는 2천만 명에 달하는 신도조직과 재정능력이 놓여 있다. 한국불교는 이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분야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불교와 권력이 21세기 한국불교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 권력화’ 메카니즘


“90년대 이후 한국종교는 종교재산을 사유화 세습화하며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되는 한편,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성역으로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권력화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다.”
종교자유연구소 정웅기 정책실장은 이와 같은 비판과 함께 “94년 종단개혁이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의 절대 권력이 붕괴시킨 결과, 한국불교는 근대적인 권력시스템을 창출해 냈다. 그러나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민주화를 위해 도입된 선거제도는 ‘계파정치’를 낳고 있다. ‘권력’의 논리가 교단 상ㆍ하층부를 관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권력의 구심점은 어디일까?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전통적으로 스승의 수행가풍을 잇는 자발적인 모임인 ‘문중’을 불교 권력화의 핵심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문중제도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권력지행의 패거리주의’라는 병폐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각종 선거 등에서 ‘종정은 00문중에서 나왔으니 총무원장은 00문중에서 나와야한다’는 식의 문중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중 권력은 각종 선거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문중 스님들이 교구본사주지 등 주요소임에 같은 문중스님을 앉히기 위해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본사주지가 말사주지 인사권 등 주요 행정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문중 소속 스님이 본사 주지소임을 맡으면 자동적으로 같은 문중스님들이 말사주지를 차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문중들은 각종 선거 운동에서 총력전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혼탁 과열 선거가 재연된다. 최근 모 총림에서 방장과 주지 선출을 놓고 빚어진 갈등의 배경에도 ‘문중’을 중심으로 한 권력들이 놓여있다.
문중에서 출발한 권력화의 흐름은 중앙종무기관 교역직과 종회의원 자리를 놓고 다시 갈등을 빚는다.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금권 및 부정선거를 둘러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각종 종법과 종책을 만들어내는 중앙종회의 권력화도 현재진행형이다. 정웅기 실장은 종회에 대해 “권력기구로서 속세의 국회를 능가하고 있다. 법제 마련보다 정파간 싸움에 몰두하고 이권에 따라 이합 집산하는 정쟁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 권력화의 순기능을 살려라


‘불교 권력화'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리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나 시민운동가들은 남북교류 사업, 환경과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종교단체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천성산과 북한산 살리기 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불교란 거대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사찰이 검은 돈의 세탁장소로 이용되거나, 사찰이 환경을 파괴하고 힘으로 무마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종교단체가 사회적 기여 이상으로 과도한 지위와 권한을 누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단 권력화의 길에 접어든 이상 불교가 이것을 회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불교권력이란 불교의 사회적 위상에 따라 부여된 권리와 의무이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된 각종 환경운동에서 보듯 불교권력이 사회발전과 통합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불교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동국대 정각원장 진월 스님은 “활인검 살인검이란 말처럼 불교권력 운용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며 “시대의 사표가 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지도자를 뽑기 위해 스님들이 공심으로 종단 발전 위해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중불교에서 '도시불교'의 시대


서울 모 사찰에 다니는 김성현 거사(40)는 주지스님이 신도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혀부터 찼다. “수행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스님의 행동이 재가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 박영아(38) 보살의 의견은 다르다. “요새 포교를 하려면 신도들에게 친근한 스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탄압을 받아 산중에 머물렀던 한국불교가 20세기 이후 세간에 나오면서 생겨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고고하게 수행을 하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서는 한국불교가 현실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다. 불교 세속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종교의 세속화란?


불교적 식생활이 ‘웰빙 열풍’을 통해 알려지거나 불교수행법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일종의 긍정적 세속화다. 반면에 종교가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오히려 세간 정치 경제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현상은 부정적 세속화의 한 단면일 것이다.
한신대 강인철 교수는 부정적 세속화가 진행되면 결국 종교의 상품화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시장경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돼 상품화와 산업화되는 과정을 밟는다”고 말했다.
종교가 본연의 가르침과 윤리를 잃어버리고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세속화. 더 이상 자본주의의 논리가 불교적 가치를 좌우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불교가 설 자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상품화하는 불교


‘불교의 상품화’란 말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윤남진 사무처장은 “한 대형사찰 수입의 70% 이상이 불공과 불전, 부처님오신날 수입에 달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수입원들이 기복과 관련을 맺으면서 종교적인 공동체성의 붕괴를 촉진하고 상품화되고 소외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재가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수입원은 중형사찰의 수입 97%, 소형 사찰 수입의 86%에 이를 정도다.
부전 스님의 제사담당 노동자화도 상당부분 진행된 상황이다. 출가 이후 여러 절을 떠돌며 부전 소임을 맡았다는 한 비구니 스님은 “기도소임을 맡은 부전이 고용된 ‘목탁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재가자인 종무원에서 구박을 받기도 한다”며 한숨을 쉰다. 일본불교의 경우에는 부전 역할을 하는 스님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보도가 해외토픽에 등장하기도 했다.


#사찰 경제의 사적 소유, 사설사암


불교 세속화는 사찰경제의 사적 소유화로 나아간다. 그 핵심에 스님 개인이 설립해 대물림하는 ‘사설사암 문제’가 걸려있다. 2004년 조계종 공찰은 8백 7십여 개인 반면 사설 사암의 숫자는 이미 1천 3여 개를 넘어서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사설사암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사설사암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불교재산의 유출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공찰이나 관람료 사찰 주지소임을 맡는 동안 사설사암을 짓는 일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주지가 되기 위해 금전이 오가고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토굴을 빙자한 호화 사설사암을 만드는 것도 불교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


#불교적 가치와 현대사회 접목 방안 마련돼야


불교 세속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복적인 신앙행태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불교의 정서상 기복성을 완전히 탈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불교계 내부에서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불교적 가치와 현대사회를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찰생활 체험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처럼 불교와 현실의 접목을 무조건 나쁜 시각에서 바라볼 일도 아니다. 현대사회 문제에 대해 불교가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동해 삼화사 주지 원명 스님은 “사찰이 지역사회 공헌도로 평가받는 시대가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일반기업들도 사회 흐름을 쫓아가기 위해 ‘윤리경영’ ‘고객만족 경영’ 등을 내세우고 활동하는 것처럼 불교 역시 미리 사회의 흐름을 읽고 변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유신 기자 |
2005-10-08 오전 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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