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는 화합된 무리가 집단의식을 구현하는 곳이며 불법에 의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조직은 법이나 제도 같은 하나의 틀로 운영되며 법과 제도의 개혁을 통해 조직의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2005년 한국불교는 승가다운가? 만약 승가답지 못한다면 어떤 운영의 틀이 변해야 하는가?
▲2005년 한국불교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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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선암사와 범어사 문제와 관련한 소송도 불교계 내부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선암사 토지보상금 처분과 범어사 주지 선출과 관련한 문제로 종단의 수장인 총무원장 등을 상대로 사회법에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신수길)는 지난 9월 14일 前 부산 선암사 주지 정야 스님이 제기한 ‘해임무효’ 소송에 대해 “원고(정야 스님)는 종단 내의 시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위 각 가처분신청을 했고, 총무원장당선무효확인 등 청구의 소에 관해도 원고는 종단 내의 시정절차를 전혀 밟지 아니하고 위의 소를 제기했다”며 “이는 모두 승려법 제47조 제14호의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2005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 공사 관련 의혹이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영담 스님 등은 기자회견 및 간담회를 통해 “원가계산서가 사전에 유출되는 등 공사 입찰부터 비리가 있었다”며 관련자 및 관련 업체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계종 총무원측은 공사 계약을 해지하고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을 담합혐의로 고발조치했다. 그러나 파장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그러던 중 월간중앙 사태가 발생했다.
월간중앙은 9월호에서 “조계종 4대 의혹을 캔다”라는 제목으로 ‘2003년 총무원장선거 때 양 캠프 돈 얼마나 뿌렸나?’ ‘불교박물관 공사비 2배 뻥튀겨진 이유?’ ‘화엄사 M주지 비리 등 검찰 수사 어디로 가고 있나?’ ‘아파트 공사에까지 미친 추문의 진상은?’ 등 4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불똥은 8월호로 튀었다. 8월호에서는 큰스님이 수간(獸姦) 하는 등 불교폄훼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기고문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월간중앙과 중앙일보사 앞에서 항의농성이 진행됐고 결국 월간중앙측의 사과로 일단락 됐다.
▲시대 변화에 따른 종단 운영 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면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있다. 일제강점으로 우리 민족의 자력 근대화가 박탈됐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파생됐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불교계에도 그대로 도입된다. 일제는 한일합방 1년 뒤인 1911년 6월 3일 사찰령을 제정 반포하고 그 해 7월 8일 사찰령 시행규칙을 공포했다. 이 사찰령은 한국불교를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에 의해 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조계종의 지방종무기관인 본말사는 바로 이 사찰령과 그 시행규칙에 의해 처음으로 등장했다. 즉 현재의 교구본말사 제도는 역사적 행정적 기준 없이 일제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조직화되고 위계화된 체제이며, 이로 인해 민주적인 산중공의(山中公議)제도가 사라지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을 거친 한국불교는 이른바 ‘정화’의 시기를 맞게 된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 발표를 계기로 시작된 정화는 비구와 대처간의 분쟁으로 이어졌다.
정화가 왜색불교 청산, 청정수행가풍 회복 등 한국불교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화 과정에서 정부권력의 묵인이나 방조를 통한 폭력이 난무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화 운동은 출세간의 도덕적 윤리적 행위가 아닌 세속적이며 비도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불교재산의 망실, 불교에 대한 불신감, 승려자질 저하, 정치권력에의 예속, 분종과 종파난립 등의 폐해를 가져왔다.
비구와 대처간의 갈등은 1970년 대처측이 분종을 선언하면서 조계종과 태고종이라는 종단간의 분쟁으로 이어졌지만, 통합종단 내에서는 종정과 총무원장과의 갈등이 심화됐다. 종단 내부권력 헤게모니를 두고 벌어진 이 싸움은 권력 소외층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는 약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즉 종정과 총무원장과의 갈등은 중앙종회와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종헌종법은 권력독점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됐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종헌종법이 제개정되기 보다 권력을 소유ㆍ유지하기 위한 ‘겉옷 갈아입기’를 할 뿐이었다.
94년 종단 개혁으로 종단 운영의 제도적 틀이 바뀌었다. 당시 개혁회의는 총무원장 및 종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통해 종도들의 참종권을 확대했으며, 중앙종회의를 독립적인 의결기관으로 만들었다. 교육원과 포교원을 독립적인 별원으로 신설해 삼권분립을 실현시켰으며,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 사찰을 지정할 수 있는 법규를 마련해 재정의 중앙집중화를 꾀했다. 이 밖에도 사설사암 종단등록 의무화 및 삼보정재 유출을 방지하는 법안을 만들었으며, 제한적인 내용이지만 재가신도들의 사찰운영 참여의 길도 법제화했다.
하지만 권력의 민주화를 위해 도입된 선거제도가 계파정치를 낳게 됐고, 권력독점이 권력과점으로 구조가 재편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중주의와 교구본사가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문중은 스승의 수행가풍을 잇기 위해 생겨난 자발적인 모임이지만, 최근 문중은 교구본사라는 행정체계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변질됐다. 여기에 폭넓은 인사권과 불징계특권 등을 지니고 있는 중앙종회가 권력 핵심으로 떠올랐다. 중앙종회는 건강한 비판과 견제를 통한 생산적인 종책을 내놓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는 이익집단으로서의 기능을 더 많이 수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혁정신,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조계종은 94년 종단 개혁을 통해 종단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94년 개혁정신은 점차 사라져갔고 또 하나의 권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종단 안팎에서는 94년 개혁정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은 남기신 가르침과 율장을 근거로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 주는 평등한 공동체로 유지됐다. 상가(Sangha, 僧伽)라고 불리는 불교공동체는 구성원들의 평등한 권리와 민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것은 대중공사(大衆公事) 혹은 산중공의제도라는 전통으로 근세까지 남아있었다. 따라서 보다 승가다운 종단 운영의 틀을 만들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평등한 권리와 민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전통을 오늘에 맞게 되살려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선 권력 분산과 견제장치가 보다 폭넓게 준비돼야 한다. 가능하면 권력의 형성 과정부터 공개되고 저변이 더 넓어져야 한다.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건설돼야 한다. 권력독점을 방지하는 견제장치도 필수적이다. 철저히 3권 분립을 실시하고, 권력별로 권한과 책임을 더욱 분명히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사회 일반이 요구하는 투명화 수준에 맞게 사찰과 종단의 살림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권력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조계종은 94년 종단 개혁 때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중앙종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선 몇 억, 총무원장에 당선되기 위해선 몇 십억을 써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등 선거로 인한 폐해가 점점 심각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6월부터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을 시작으로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간담회가 진행됐다.
그 결과 △현행제도 보완 △선거인단 축소(교구본사주지+중앙종회의원) △추대(합의추대위 구성, 선거인단 추첨) △총무원장 권한 축소 등 4가지 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장 인곡당 법장대종사의 갑작스런 원적으로 모든 논의가 일시에 중단됐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어떤 형식이로든지 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거법 개정과 함께 불거진 것이 총무원장 중심의 권력구조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재처럼 총무원의 임직원과 각 사찰 주지를 임면하고 재산을 감독하며 처분 승인권을 갖는 등 권력이 총무원장에게 집중되면 각종 불필요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시대의 흐름에 맞게 종단이 보다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총무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교구본사로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이미 ‘지방 호족화’돼 있는 교구본사 내부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비구승 중심의 권력구조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종권 분쟁이 되풀이 되는 것은 비구승만의 종단 운영 관리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건강한 새 주체를 영입하기 위해선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종단 대의 기구 및 집행부 등 권력구조를 명실상부하고 사부대중이 동등한 권리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신도 교육 시스템 및 신도 교육 프로그램 마련, 사회활동 프로그램 정립, 신도 지도자 인력 양성시스템 확충, 인적 네트워크 구성, 신도회 재정자립 등의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문화재관람료 수입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 또한 마련해야 한다. 문화재관람료에 의지해 사찰을 유지운영하거나 불사를 하는 재정구조의 때문에 포교 활동이 등한시됐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사회단체들이 문화재관람료 통합징수의 부당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 유지, 보수 등을 국가예산에 편성토록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도움말 주신 분 : 법산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 법안 스님(조계종 기획실장), 김희욱(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원장), 조기룡(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김경호(前 조계종 개혁회의 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