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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의 세계는 우리 몸속에도 있다. 세포에 들어있는 세포핵의 크기는 수십 나노이고 우리 자신과 자손의 형태 등을 결정짓는 DNA의 크기가 몇 나노에 불과하다. 또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 크기도 나노미터 단위이기 때문에, 나노미터를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으면 생명 현상까지도 조작될 수 있을 것으로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나노 과학과 달리 마이크론 시대를 처음 열었던 반도체 기술은 인위적인 것이다. 광학의 원리를 이용해서 반도체 소자나 회로를 렌즈로 축소해서 반도체에 전사함으로써, 많은 수의 트랜지스터를 반도체 칩에 만들어 넣을 수 있는 기술이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광학기술과 더불어 정교한 반도체 조작기술을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훌륭히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 등에 들어있는 메모리칩에서 한개 비트를 저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60나노미터 정도이므로, 반도체 기술 또한 나노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기술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나노 크기의 트랜지스터는 광학기술에 의해서 정확히 조작된 결과물이다.
이에 비해서 세포핵과 같은 나노 크기의 물질은 하나 같이 자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식물이 매 순간 행하는 탄소동화작용 역시 햇빛과 탄산가스를 받아서 녹말 등을 만들어 내는 나노의 세계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서 나노 과학자들은 적당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자연이 하는 바에 따라서 나노크기의 입자나 튜브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를 SA(자기조립:self assembly)기술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무위의 기술인 셈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번뇌하는 것 역시 나노의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작용으로 현대 뇌 과학은 이해하고 있다.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세라토닌을 투여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역시 행복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부족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유 없이 번뇌가 생길 때, 가만히 무위의 세계를 느껴보도록 하자. 무한겁에서 생겨난 DNA의 결과물을 느끼게 될 것이다.
531호 [200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