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는 단순하게 보이는 숨의 중요성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숨을 쉬면서 살기 때문이다.
요가에서는 숨에 숨어있는 생명력을 프라나라고 한다. 프라나란 ‘숨을 쉬는 것(혹은 참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하는 곳에서 생명력의 존재를 느끼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빠사나를 통해 익숙해진 개념인 사띠(sati)는 들숨(ana)과 날숨(apana)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외부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테크닉이다.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은 부처님이 월지국에서 머무시면서 90일간 이 들숨, 날숨 테크닉으로 선정에 드신 경험을 설한 경전이다.
‘수의’는 사티 즉, 마음 챙김을 번역한 말이므로, 들숨, 날숨을 따라감으로써(수식:숨을 따라감) 마음을 챙기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다. 간단하게만 보이는 ‘숨을 따라감’을 통해 절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게 보인다.
중국 사람들은 술을 먹으면, 창자가 뜨거워진다고 말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이를 열중창이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같이 술잔을 나누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감복(感腹: 현재는 感服이라고 쓰지만)이라는 단어도 배가 느낀다는 중국인들의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사람이 현지 사람들에게 사람이 머리로 생각한다고 했더니, 깔깔거리고 웃더라고 하는 여행기를 기억한다. 그 사람들은 배로 생각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숨’은 피에 산소를 공급하는 과정이다. 기도를 통해 폐로 전달된 공기 중의 산소가 헤모글로빈에 실려 피에 전달된다. 이 산소가 세포의 에너지 발생과정에서 생성되는 수소에게 산화제로서 작용함으로써, 원만한 에너지 발생메카니즘을 완성시킨다.
여기서 발생한 에너지는 안이비설신의를 통한 안팎의 정보가 신경세포를 거쳐 뇌로 전달되는데 기여한다.
현대 뇌 과학은 높은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대뇌가 아니라, 숨과 피와 내장을 제어하는 숨골과 대뇌의 연결고리인 변연계에서 ‘나’라는 느낌이 만들어지고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메커니즘이 생성된다는 인식에 도달해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숨이란 산소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숨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나’라고 하는 느낌을 제어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 아닐까.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되는 희로애락의 마음이 의도대로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숨과 연결된 깊은 뇌의 구조에 있기 때문이리라. 배로 생각한다고 믿는 관념 역시 숨과 연결된 구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유 없이 번뇌가 일어날 때, 숨을 고르고 이 숨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부처님께서 실증적으로 숨의 고름을 통해서, 수 억년 깊은 뇌에서 각인된 업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29호 [200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