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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사명연무분별이라는 말은 부처라는 본질인 ‘이’와 바깥을 인식하는 경계(눈, 귀, 코 등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경계)인 ‘사’의 구분이 없어지는 깨달음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사가 일치해야 뭐든 제대로 돌아간다. 지금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은 이판승(수도하는 스님)과 사판승(절의 행정을 맡은 스님)이 조화를 이뤄야 여법한 수도공간이 이뤄짐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안과 겉은 어떠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과연 안은 본질을 표시하고 겉은 본질을 나타내 보이는 창구일 뿐일까. 현대의 과학은 어떤 물질(생명체를 포함해서)의 안의 과학에서 겉(표면)의 성질을 탐구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이 보인다. 어떤 물질이라도 안과 이를 싸고 있는 표면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많은 분자들이 자기들끼리 결합을 이루는 ‘안’의 성질에 비해서 바깥 세상과 경계하고 있는 표면의 성질은 참으로 오묘하기 짝이 없다.
옛날 어머니들은 정화수를 떠 놓고 자식의 성공과 안녕을 빌었다. 물과 사발이 닿아 있는 부분에서 물은 동그래지는 모양을 가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표면장력이라 불리는 이 성질은, 물분자끼리 서로 경계하고 있는 사발안의 물과는 달리 바깥 공기나 사발과 같은 다른 물질과의 접촉하고 있는 물이 가지는 특이한 성질 때문에 나타난다. 빨래의 때를 없애는 세척제 또한 세척제 분자가 때의 표면에 작용하는 특이한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에 비해서, 개미와 같이 작은 부피를 가지는 생명은 안의 부피에 비해서 표면의 면적이 훨씬 크다. 따라서 작은 생명체가 될 수록 표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최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는 나노 과학은 바로 나노 크기와 같이 물체가 작아질 때 중요해 지는 표면을 이용하고 탐구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체를 탐구할수록, 안과 표면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의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과 남에게 나타나는 나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라는 느낌이 들 때, 현대과학이 가르쳐 주는 힌트를 되새기도록 하자.
참 자신을 찾는 수행자가 보여주는 맑은 얼굴과 투명한 눈, 그리고 자비의 모습에서만이 우리는 자신의 ‘안’과 다르지 않는 진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528호 [200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