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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에서 추앙받는 위대한 깨달은 자 중 중국 당나라의 방거사가 있다. 향엄 스님의 절에 머물렀다 떠나는 날 아침.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향엄 스님은 제자 10여명을 보내 배웅했는데, 마침 눈이 오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보면서 수퍼스타 방거사가 한 말씀이다. “어느 눈송이 하나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 옆의 제자 중 한명이 그러면 어디로 떨어집니까 하고 물었다가 주먹 한 대를 얻어 맞는다. 벽암록이라고 옛 선문답을 모아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흔히 선문답은 우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설명을 불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세익스피어의 소네트보다도 더 장엄한 인간과 우주의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를 발견한다.
눈송이가 떨어진다. 눈송이가 땅의 한 지점으로 떨어지는 것이 의미 없는 한 가지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눈의 순백에서 원초의 흔적을 느끼기도 하고, 과학자는 눈이 가지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결정체를 현미경 아래서 발견하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공기에 먼지가 없었다면,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먼지가 태양 빛을 흡수하기에 지구 표면에 파장이 가장 긴 빨간색이 가장 많이 남았으며,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나뭇잎은 빨간색을 흡수하는 대신, 초록색을 반사하고 있다. 우리가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은 식물에게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생존한 수백 만 년 진화의 흔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먼지가 없었다면 우리의 생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송이 하나가 만들어지고, 바로 그 자리에 떨어지는 것 하나까지도 우리 생명, 아니 무생물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방거사의 선문답은 이러한 생물우주관과 하나가 된 자의 위대한 소네트라고 할 것이다.
눈 오는 날, 이유 없이 마음이 들뜨고 불안해질 때, 방거사의 눈을 생각하면서 이 눈이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 일까하고 물어보자. 다른 무엇으로 느껴진다면, 그렇게 느끼는 자는 누구인가를 곰곰이 되 물어보도록 하자.
511호 [200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