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에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제32대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가 10월 31일로 공고되자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열기가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계 안팎에서는 도대체 조계종 총무원장은 어떤 자리인가? 라는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한국 대표종교의 대표종단 조계종. 조계종의 행정수반인 총무원장은 실질적인던 상징적이던 적지 않은 위상을 갖는 자리다. 네 차례에 걸쳐 조계종 총무원장은 어떤 자리인지 조명해 본다.
연재순서
1. 위상과 권한
2. 어떻게 선출하나
3. 인물로 본 총무원장 上
4. 인물로 본 총무원장 下
최근 원적에 든 인곡당 법장 대종사가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측은 법장 스님이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를 직접 만나 한반도 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측은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조계종 총무원장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 왔다. 조계종 총무원장의 위상을 파악한 뒤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미 한국대사관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부르면)대통령을 제외하고 누구든지 오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법장 스님은 미국 방문시 엘리어트 에이브럼스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보좌관과 디트러니 북핵 대사 등과 연쇄적으로 회동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 ||||
조계종 총무원장은 불교계를 대표할 뿐 아니라 종교계를 대표하기도 한다. 법장 스님이 한국종교를 대표하는 7개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의장직을 맡았던 것도 이에 기인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청와대에 초청돼 가면 국무총리급 대우를 받으며 대통령 옆 좌석에 앉기도 한다.
이 같은 위상 때문에 장관 등 주요한 위치에 오르면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해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또 정치권에서는 어려운 일이 있거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으면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해 법문을 듣기도 한다. 이 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에 대해 조계종 총무원장이 상징적인 비유를 섞어 이야기를 하면, 서로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상황이 발생되기도 한다.
조계종 총무원장 위상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4년 종단 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한 총무원장은 당시 문공부 주사를 만나기 위해 1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사회정치권에 대한 총무원장의 저자세에 대해 ‘호(護)정권불교’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94년 종단 개혁 후 목소리가 커지면서 종단 위상이 높아졌고 따라서 총무원장 권한 및 위상이 높아졌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권한은 종정에게 집중돼 있었다. 62년 통합종단이 출범하면서 종정은 비구측, 총무원장은 대처측으로 나눠졌다. 그러나 60년대 말 비구로 종단 정체성을 확립하며 종정측에 힘이 쏠렸다.
종정은 인사와 재정에 관한 전권을 가진 반면 총무원장은 종정 보좌에 불과했다. 67년 종정 청담 스님과 총무원장 경산 스님간 대립 내분도 이 때문에 발생했다. 66년 통합종단 제2대 종정으로 추대된 청담 스님은 종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려 했고, 총무원장 경산 스님은 종정이 지나치게 실무를 장악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78년에도 종정측의 조계사와 총무원장 중심제로 종헌을 개정하려는 종회측의 개운사 2개의 총무원으로 분열하는 극도의 혼란상을 3년간 지속했다. 80년대에 들어와서 총무원장이 사회법상 종단의 대표성을 갖게 된다.
일반 사회의 헌법에 해당하는 종헌 제54조 1항에 따르면 ‘총무원장은 본종을 대표하고 종무행정을 통리한다.’ 총무원장은 국회에 해당하는 중앙종회에 종헌 종법 개정안, 종법안을 제출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종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사회법상 대통령령에 해당하는 종령을 발할 수도 있다. 총무원장은 중요한 종책을 심의 의결하는 종무회의의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한다.
총무원장은 총무원 임직원과 각 사찰 주지를 임면한다. 또 종단과 사찰에 속한 재산을 감독하며 처분 승인권을 갖는다. 총무원장은 당연직으로 조계사를 비롯한 직영사찰 주지, 중앙승가대 이사장, 사회복지재단 이사장 등을 맡는다. 교육원장과 포교원장도 총무원장의 추천으로 중앙종회에서 선출된다.
이처럼 총무원장은 많은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94년 종단 개혁으로 삼권분립 및 총무원장 주요 보직 겸직 금지 등을 이뤄냈지만 그 권한은 여전히 막강해, 각종 오해와 추문에 시달리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쟁의 한가운데에 서기도 한다. 이로 인해 종단 대사회적 이미지가 흐려지기도 한다.
이 같은 폐단 때문에 총무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교구본사로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교구본사 또한 이미 몸집이 비대해져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오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의 이상형은 수행자로서의 위의와 행정수반으로서의 역량 즉 ‘이판사판’의 자질을 두루 갖춘 덕망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행정 정치라는 현실과 한국불교 대표종단의 수장이라는 ‘명함’ 사이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