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 잎이 팔공산에 떨어지니 빛깔에 안팎 있어 바로 가을잎이라. 그 가운데 무슨 비밀이 있는 듯하나 떨어진 꽃 한송이 가지로 다시 올라가네.”(효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 ||||
편지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간의 내밀한 소통이다. 산사의 스님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서로의 깨달은 바를 점검하는 촌철살인의 선문답과 수행자로서 느끼는 고뇌와 갈등 같은 인간적인 면모까지 두루 소개돼 있다.
<산사에서 부친 편지>는 경봉 경허 만해 성철 효봉 청담 스님 등 근ㆍ현대의 고승 50여명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다. 통도사 극락선원장 명정 스님이 스승 경봉 스님에게 물려받은 쌀가마니 두개 분량의 편지들 중 해독 가능한 130여 편을 골라 우리말로 옮겼다.
스님들은 편지를 통해 흩어진 잡념을 모두 지우고 정진하라고 서릿발 같은 경책을 내리기도 하고 “바람벽을 하고 서서 물끄러미 석양을 보노라니 불쑥 스님 얼굴이 떠오르지 않겠소. 그래서 발우에 지는 해를 담아 훌훌 마셔버렸소.”라며 따뜻한 정을 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치열한 구도과정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겪는 세속적인 번뇌와 갈등, 혈연에 대한 애틋한 정도 담겨 있다.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잠시 산을 내려가야 하는 제자 벽안 스님에게 경봉 스님은 “부디 이번 길을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병간호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그대를 나무라지는 않을 걸세”라는 답신을 보냈다.
편지를 주고받은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지 않고 한문 원본을 싣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편지 한 장 한 장마다 수행자의 참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돌아보면 저에게 남은 것은 방 안에 걸어둔 붓 한 자루와 낡은 서책 몇 권, 그리고 내 몸을 근질근질하게 하는 쥐벼룩 몇 마리가 전부일 뿐, 한평생 살아온 삶의 무게가 오직 그것뿐입니다.”(한암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