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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제와 ‘꿈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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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자리는 진보의 제일선에 있다.” 평생을 자립적이고 자족적인 삶으로 일관했던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스승이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라 한다. 그는 이 말 다음에 “나는 어떤 사회체제에서든 교사의 역할이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교육부총리가 9월부터 시범 실시하겠다고 밝힌 ‘교원평가제’가 흐지부지되고 있다. 교원단체들의 반발 때문이다. 진보적 교원단체임을 자처하는 전교조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식 있는 교사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쓰일까 봐’ 혹은 ‘일부 악의적인 민원에 따라 무고(誣告)한 피해를 보는 교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군색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의 분별력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설사 일부 몰지각한 교육 행정가나 학부모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교원평가제’를 거부할 명분일 수는 없다.

잠깐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할까 한다. 서울 강북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모 중학교의 3학년생인 딸아이가 2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학기 초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전자계산기를 들고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설마 싶어 다그치듯 재차 확인했지만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더욱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놓았다.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적당히 얼버무리며 ‘학원에서 다 배웠지’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학교장이나 교육청에 항의를 할까 하다가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솔직히 우리 아이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비겁함도 있었지만, 무고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취조 받듯이 이곳저곳 불려 다닐지 모를 ‘비교육적’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도 공교육 부실의 공범자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거의 공(空) 교육이 되다시피 한 우리나라 공교육(公敎育)의 현실이다. 교원 단체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분적인 사실을 일반화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는 공감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와 학원의 주종관계가 역전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른바 명문 학원가와 집값 상승의 상관관계는 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교원의 전문성을 지금의 몇 배 수준으로 강화하지 않고는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중?고교 영어 교사의 토익 시험 성적이 대기업 입사 지원자의 평균을 밑돌고 심지어 14%가 중학생, 8%가 초등학생 평균점수 이하인데 어떤 부모가 빚을 얻어서라도 학원에 보내지 않을 것인가. 부모의 형편이 빚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 가난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 교사는 과연 어떤 종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인가. 초ㆍ중ㆍ고교생 자녀를 가진 교사들이라도 떳떳이 한번 밝혀 보라.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몇 명이나 되는지. 갈수록 이 나라에는 자식들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 ‘평준화’의 이상을 실현하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뜨거운 열정을 증명하기 위해서도(이런 것들이 진보의 지향점 아니가) 교원의 자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지표인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도 교원의 전문성 부족이 주요원인이다. 그럼에도 평준화의 기조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인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만약 사교육은 엄두조차도 내지 못하는 아이가 무능한 교사로 인하여 기회의 평등조차도 박탈당한다면 그것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일이다.

가르치는 자가 먼저 배워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는 것 없이 스승이 되지 말라’고 했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속이는 일이며, 남을 기만하는 일이고, 나아가서는 많은 사람들을 오도하는 일이므로 그 죄가 크다’고 했다.(범망경)

교원평가제가 교원의 전문성 강화를 100% 보장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현실적 대안은 될 것이다.
윤제학(동화작가) |
2005-09-28 오전 9:56:00
 
한마디
모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점에서 교사와 교원단체가 한탄의 소리를 토하는 것이지, 시대의 요청과 교육수혜자의 요구를 외면할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손안대고 코푼다는 속담처럼, 전혀 비젼과 진정한 개혁의 재원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섯부른 메스질을 해댄다고 나설려고 하는 경솔함을 우선 질타해야할 것이다. 쉬운 수술이 아니라면 밤을 지새우며 고민할 것이지 함부로 되지않을 칼질은 삼가해주길 제! 발! 요즘 교사들은 매를 포기했다. 회초리를 버리고 있다. 인성지도를 외면해가고 있다. 교사도 어쨋든 먹고 살아야하는 직업인이다. 아이들은 이미 철저히 이기적이어서 오직 자신들의 성공만 중요할 뿐이다. 부모로 부터 이 사회로부터 그런 가치관을 주입받은것이다. 교사들이 제일선에서 이걸 느끼고 있다.'밥맛없지만 월급을 위해선 너희 같은 쓰레기들도 상해해주지...' 그렇게 교사들도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평가? 어디 한번 손안대고 코풀어봐라. '교원평가상황부'라는 서류철만 하나 더 생길 뿐일테니까... 붓을 놀릴줄 안다고 함부로 글을 쓰지말길 바란다. 작가라는 직함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10번 100번 생각하고 글을 쓰시길 바란다. 이 분이 동화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글을 읽어보면 가슴은 없고 세속의 논리가 머리에 들어와 앉아있다. 세상이 온통 이런자들 뿐이니 어찌 인의를 이야기할 수있겠는가. 하물며 道에 있어서랴!
(2005-09-28 오후 9:42:52)
70
전혀 교단의 현실을 모르는 글이다. 옛날에는 선생님들도 나름대로 엘리트 계층이었다. 30년,40년 오직 나라를 일으키기위해 '사명감'하나로 모든걸 불살라버린 세월이 머리 희끗하신 선생님들의 삶이었다.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뒤에 그저 대포술 한잔을 들며 정신적,육체적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에 바쁜 세월이었다. 무슨 연구와 탐구가 가능했으리오. 험준한 산골 벽지에서 또는 숨가쁘게 성공을 향해 치닫는 도시 한복판에서 오직 어쩔수없이 당면한 시대의 요청에 응하여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희생의 땀방울로 어쨋든 우리는 이렇게 잘살게 되었으며, 이만큼 지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선생님들에게 돌려준 것은 무엇인가? 오직 구하는 것은 자기와 자식의 이익일뿐 인의와 대의심은 사라진 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리오만, 자고로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지말라고 하였던가. 대기업이라니?? 어처구니가없다. 지금 대기업과 교사의 보수와 처우를 비교하겟다는 것인가? 일본도 싱카폴도 교육의 개선을 위해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이 '우수교원 특별법'을 기조로한 교원의 처우개선과 사기진작이었으며 그러한 장기적 비젼에서 우수한 인력을 교사로 유입시키는 정책이 우선이었지, 대뜸 돈안드는 평가라는 도구로 이미 어쩔수 없이 굳어지고 뒤처진 분들을 다시 벼랑으로 내모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감사와 보은이 우선이다. 나는 사람사는, 사람냄새나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감사와 보은을 다한 후에 '우수교원 특별법'같은 획기적인 대안으로 능력있는 인재를 지속적으로 교단으로 유입케 하면서 점차 나태함에 주저앉지 못하도록 끊임없는 연찬과 평가를 바탕으로 승진체제를 도
(2005-09-28 오후 9: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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