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차는 백련암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금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며 백련암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살이에 끄달리면서도 때가 되면 백련암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부처님 만나기 어렵고, 또한 정법(正法)을 만나기 어렵고, 좋은 도반을 만나기 어렵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나는 이미 사람의 몸을 받았으며 부처님을 만났고, 대한민국 수많은 불제자 가운데서 성철 큰 스님에게 심원(心源)이라는 불명을 받으면서, 정법 공부를 했고, 백련암으로 삼천배를 하도록 이끌어주신 진여심, 대원행 보살님을 만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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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님, 무슨 고민이신지 모르겠지만, 원을 세우고 기도를 하시려면 해인사 백련암이라는 곳에 성철 큰 스님이 계시는데, 거기 가셔서 삼천배를 하고 난후 친견을 한번 해 보세요.”
당시 나는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삼천배라는 절의 숫자가 얼른 이해도 되지 않았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데, 108배도 아닌 삼천배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내 의식수준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고, 광신적인 종교집단의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는 아주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내 나름대로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에 매일 청련암에 가서 절을 하고 있었고, 무리하게 절을 해서 무릎이 까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처음에는 어설프고 서툴기만 하던 자세가 차츰 모양새가 갖추어져 가고, 절 횟수도 늘려 갈 수 있었으며, 조금씩 심리적인 안정감도 느껴지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작은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불교서점에 들러 불교관련 서적을 몇 권 씩 사서보면서 불교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과 열정만이 나를 지배한 채, 그 해 여름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땀에 전 옷과 몸을 법당 밖으로 나와 말리면서 자판기의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진여심 보살님이 환한 얼굴로 웃으며 다가왔다. 보살님은 범어사에서 100일 동안 1000배와 능엄주 30독씩 하는 기도를 오늘 회향하고 가신다면서, 처사님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도반 한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며 커피를 한잔 빼 드리고 법당으로 올라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저분들은 어떤 생각과 간절함으로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법복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을 때 까지 절을 할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한참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복잡하던 내 심경으로는 그 의문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고, 오직 나의 뜻 한 바대로 내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진여심 보살님이 전화로 “오늘 오후에 시간이 나면 좀 만날 수 있겠느냐”는 말과 함께 “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지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예”라는 대답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가니, 대원행 보살님과 내 나이또래의 여륜 거사님이 같이 나와 계셨다.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원행 보살님께서 여륜 거사에게 같이 좀 갔다올 곳이 있다며 일어서시는 것이었다. 나 역시 엉거주춤 영문도 모르고 뒤를 따라가니 법복(승복) 맞춤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들어서자 대원행 보살님이 손수 잿빛으로 물들인 무명천을 내 놓으시며 나를 가리키면서, “저 처사님 법복 좀 맞춰 주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남자가 무슨 법복을 입나?’ 하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법복 입은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기에 법복이란 보살님들이나 절에 갈 때 입는 옷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법복집에서 옷을 맞추고 나오자 여륜 거사는 나에게 말했다. “백련암에 삼천배 기도하러 가실 거죠? 저도 갈 거니까 같이 갑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백련암에서는 거사들도 법복을 입어야만 삼천배 기도를 할 수 있고, 성철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복을 찾는 다음날 백련암으로 삼천배 기도를 가는 일정이 나도 모르게 잡혀 있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인연이 백련암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얼떨결에 백렴암에 따라 와 삼천배 기도를 했는데, 정말 지옥훈련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이 오신 도반님들이야 모두들 오랜 세월동안 삼천배를 해 온 경험이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법당 마루 바닥에 기도하는 좌복을 포함하여 내가 설 수 있는 공간을 동그랗게 그려놓고 그 밖을 나가지 않고서 4시간 안에 삼천배를 모두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산을 해보니 한 시간에 약 800배의 절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물러설 곳 없이 만들어진 상황! 기도 잘하라고 노 보살님이 해 주신 법복을 입고, 선배 도반들이 그어준 동그라미 안에서 무조건 해 내야 하는 삼천배 기도가 드디어 내 인연공덕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몸은 이미 나의 생각을 벗어나서 움직이고, 내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해가면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땀은 그동안 남을 돌아보지 않고 욕심으로만 살아온 세월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있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대략 2700배를 넘어설 무렵부터는 몸의 감각이 하나씩 마비되고, 나의 의지와 생각이 배제된 로봇 같은 무의식의 세계가 되어서 절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나를 지배하고 있던 돈과 명예와 사업, 그리고 온갖 세속의 인연들, 그 모든 것들이 내 몸에서 날아가고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도반들의 원력으로 시작된 삼천배 기도가, 절의 횟수가 더해가면서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벗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의 마음은 이 절을 다해서 빨리 삼천배가 끝나고 성철 큰 스님을 친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