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능행 스님 지음, 도솔, 9천5백원)
1997년 무더운 여름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짐을 보면 스님 같은데 가족은 없고 임종이 임박한 사람이 있으니 한 번 와보라”는 천주교 호스피스 병동 수녀님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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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이 흐른 후 충북 청원군에는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 시설인 정토마을이 들어섰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절망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말기환자들이 쾌적하고 편안한 시설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10여 년간 불자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온 능행 스님이 기존의 호스피스 운동에 불교의 아미타신앙을 결부한 ‘아미타 호스피스운동’을 펼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능행 스님은 큰절에서 살다 병이 깊어지자 버림받은 스님을 비롯해 임종 직전에야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다면 불사 같은 것 안 하고 공부했을 텐데”라며 눈물짓던 스님, ‘카타야수 동백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전신마비와 기억상실이 찾아왔지만 끝까지 목탁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스님 등 1000여 명의 다양한 환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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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부지를 구해 정토마을의 터전을 잡았던 때부터 ‘죽을 일’ 밖에 없는 환자들이 몰려드는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한 일, 법당에 시신을 쌓아둔다는 소문이 나 주민들 몇몇이 신발을 신은 채 법당을 뒤진 일, 경찰서와 검찰청을 수 없이 드나들어야 했던 일 등을 담담하게 정리했다.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부처님의 품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재산에만 관심을 보이는 자녀들에 실망한 어머니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른 채 하고 있는 ‘죽음’의 적나라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야 삶의 소중함과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현대인들에게 스님은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삶이나 30년 혹은 50년이 남은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잘 죽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다가도 어느 날 막상 죽음 앞에 서면 그저 죽음을 피해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만이 있을 뿐입니다. 잘 죽는 법을 생각하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해결될 것입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은 절절히 보여주고 있다. (043)298-2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