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사회에서 하나의 종교가 그 사회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해보면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종교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위치다.
사회적 위치가 높은 구성원이 많은 종교는 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다시 교세를 확장하는 순환적 시스템이 형성된다. 따라서 지식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포교(선교) 활동에 따라 그 종교의 미래가 좌우된다고도 할 수 있다. 지식인 불자와 친 불교 지식인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이들이 포교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 불교는 저학력자들이 믿는 종교?
“불교는 50~60대 저학력 아주머니들이 주로 믿는 종교다?”
이교도들이 불교를 폄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트리고 있는 말이 아니다. 지금 바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이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5월 발표한 제4차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불교인 중 ‘대학교 재학 이상’은 15.6%로, 개신교인 26.6%에 비해 10%이상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에 비해 전체 불교인 중 ‘초등학교 졸업 이하’는 43.8%로, 개신교인 11.0%에 비해 3배 가까이 많았다.
이 같은 현실은 본지와 대한불교진흥원이 지난해 9월 창간 10주년 특집으로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한 ‘한국인의 종교인식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사 결과 중 종교 참여 현황을 살펴보면 ‘불교’ 신자는 △여자(27.7%) △연령이 높을수록(50대 이상:31.6%) △학력이 낮을수록(중졸이하:34.6%) 많았다. 이에 비해 ‘개신교’ 신자는 △학력이 높을수록(대학재학이상:26.7%)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식인 불자의 희소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바로 지난 3월 한국대학신문이 전국 203개 4년제 대학 총장의 프로필을 조사ㆍ발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질문에 응답한 180여명의 총장 중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고 대답한 사람은 15%에 불과한 26명이었다. 이에 비해 개신교는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79명(44%)이었다. 총장이라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종교를 밝히기 꺼려했을지도 모르지만, 종립대학교를 제외하면 불자 총장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수불자연합회 김용표 회장(동국대 교수)은 “1970년대만 해도 불교는 미신이며 기독교는 고등종교라는 인식이 팽배했다”며 “이러한 오해들이 지식인 불자의 희소성을 가져오는 한 측면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 사회 격변기엔 늘 뒷짐
구한말 자본주의와 함께 십자가가 들어오면서 국내 종교계 판도는 크나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기독교의 직접적이며 공격적인 선교활동으로 인한 교세 확장 외에도,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몇몇 눈 밝은 이들이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 등 기독교 국가로 유학을 가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자가 됐으며 다시 국내로 들어와 지식인층을 형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후 정관계 및 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요직에 앉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펼치기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기도 했다. 지역별로 개신교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주요 인사들이 인적 네트워킹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간 것이다. 지난해 불거졌던 ‘포항 기관장 홀리클럽’ 사태가 대표적이다.
불교는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근대화나 독립운동, 민주화 흐름 속에서 늘 뒷전에 있거나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는 식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분(?)’이 별로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50년대 정화’를 시작으로 ‘조계종 사태’까지 불교는 돈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을 일삼는 종교로 비쳐졌다.
이에 비해 기독교는 학교교육, 남여평등, 근대적 의료시설 등에 늘 앞서 있었고 충분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결과 기독교의 역할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고 특히 지식인층에 강한 어필을 할 수 있었다.
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는 “기독교의 경우 배아복제나 생명공학 등 최근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분야에 대해서도 교리적 원칙을 정립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불교도 사회적 이슈에 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불교대학 등 도심포교와 연계를
지식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는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된다. 그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불교계에 대입해 보자. 지식인 불자들은 불교계 내에서 상위 계층을 점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에서 보다 양질의 정보를 접하고 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쉽게 빨리 많이 접할 수 있으며 이를 자신의 수행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지식인 불자들은 포교 대상일 뿐 아니라 주체가 돼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지식인 불자들은 자신의 전문영역을 바탕으로 습득한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의무가 있다. 비근한 예가 서구유럽이나 미국이다. 이들 지역 불교의 중심에는 재가자가 있다. 이 재가자들은 포교 대상이기보다 포교 중심에 서 있다.
지식인 불자들을 발굴해 내고 양성시키기 위해선 먼저 영역별 조직체계가 형성돼야 한다. 하나의 구심점이 있어야 관련 지식인 불자들을 조직화하고 연결시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당사자들의 노력 뿐 아니라 각 종단의 적극적 지원 또한 필요하다. 각 종단이 기본적 생활조차 어려운 지식인 불자들을 위한 안전망을 마련해 준다면 튼튼한 이론적 실무적 토대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절에 오게 하는 불교보다는 생활 속에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불교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즉 지식인 불자 만들기 포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고민하는 부분을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가의 문제에 더욱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목말라하는 부분에서 보다 명쾌하게 불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불자가 될 수 있다 얘기다.
지식인 불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선 분야별로 전문화, 세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도 있다. 한국교수불자연합회(이하 교불련)은 올해초 교수포교사제도안을 조계종에 제출했다. 이는 포교원 3인, 포교사단 3인, 교불련 3인으로 구성된 포교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교수들의 교화실적을 근거로 교수포교사를 선정하는 것이다.
교수포교사제도가 시행되면 교수 불자들의 권위와 동기 부여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교불련측의 설명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해 나갈 대학생 포교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심포교 또한 지식인 불자 양성을 위해 필요한 대목이다. 1984년 보증금 5백만원, 사글세 15만원, 28평 규모로 시작한 능인선원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능인선원은 불교대학에서 50여 명이 넘는 전ㆍ현직 국회의원 동문을 배출했다. 관계, 재계, 언론계, 기업 임원, 교수 뿐만 아니라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등도 불교공부한 능인선원은, 대형 도심사찰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20만 명이 넘는 불교대 동문들에 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종립학교에서의 자연스런 포교 활동 또한 지식인 불자를 양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지식인 포교를 위해서는 불교가 사회적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특정 종교가 사회 전 부문에 가이드 기능을 할 수 있었으나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됨에 따라 공동의 보편적 가치로서 기능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인권이나 환경 등 사회적 공동선에 대해 교리적 해석을 내놓고 강한 실천력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수경 스님의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나 지율 스님의 천성산 살리기 단식 정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대종사의 법구 기증 등으로 인한 사회적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미주 포교 40주년을 기념해 법장 스님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현지 스님들을 대상으로 포교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을 묻자 하나같이 ‘언어’를 꼽았다. 현지인들 뿐 아니라 한국말에 서투른 교포 2,3세들을 대상으로 한국불교를 포교하기 위해선 스님 스스로 현지어뿐만 아니라 그 나라 문화에 정통해야 한다.
또 지식인 불자들을 대상으로 포교할 때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포교방법이 필요하다. 부처님이 여건과 상황에 맞게 방편설을 하셨던 것처럼 지식인들 수준에 맞는 포교를 하기 위해선 보다 질 높은 승가 교육 및 재교육이 필수다.
불교가 가지고 있는 사상적 잠재력은 매우 크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불교 성장 배경에는 합리성과 배치되고 현대성과 모순을 일으키는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지식인의 합리성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식인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포럼을 진행해온 노귀남 박사(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는 “포교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기 위해선 불교만 잘 알아서는 한계가 있다”며 “지식인 불자들이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서 포교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들을 자발적으로 생산해 내고 종단 차원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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