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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 영차! 모두가 '동자승'
청암사 스님들과 함께 한 증산초등학교 가을운동회


경기에서 이긴 청암사 학인스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고영배 기자.


높이 매달린 스피커를 통해 온 동네에 울러 퍼지는 행진곡 풍의 음악소리. 반짝 반짝 눈을 빛내며 출발선 앞에 선 아이들.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전력 질주하는 아이들의 뜀박질. 하늘 높이 펄럭이는 만국기.

9월 23일 김천시 증산면 증산초등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한창이다. ‘경축! 가을체육발표회’라는 프래카드가 작은 교문에 내 걸리고 음악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자 면장님, 우체국장님, 파출소장님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까지 하나 둘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증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생들도 언니 오빠들의 경기에 함께 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46명이 전부인 증산초등학교. 학생수로 보면 팀을 나눠 진행되는 운동 경기가 될까 걱정스럽지만 이날의 운동회에는 특별한 선수들이 따로 있다.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보다 더 환한 웃음 지으며 뛰고 응원하는 그 선수들은 바로 청암사(주지 상덕) 승가대학(학장 지형) 학인 스님들이다. 벌써 16년째 청암사 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선수로 참여하고 있다. 승가대학이 설립되고 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이 포교를 위해 토요어린이법회를 열게 되면서 스님과 아이들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러나 스님들은 법회를 통한 포교에서 더 나아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불법을 만날 인연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가을 운동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뛰며 아이들 속으로, 마을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줄을 당길 때마다 학생 학부모 교사와 스님들은 둘이 아니다. 사진=고영배 기자


올해는 30명의 스님들이 참여했다. 홍팀, 청팀, 황팀으로 나눠 진행된 경기에서 스님들도 승복에 색깔 깃을 달고 아이들과 편을 이뤄 운동장을 누빈다.
"뭔 스님들이 저리 힘이 좋아?"

학부모과 스님들의 줄다리기 시합에서 스님들이 승리를 거두자 운동장 나무 밑에서 구경 중이던 마을 어르신이 농담을 건넨다. 스님들의 맹활약에 놀라는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스님들을 만나니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우리보다 스님들이 더 잘하시고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야채만 먹을 텐데 줄다리기 할 때는 힘이 너무 세서 놀라워요." 청암사 어린이법회를 다니다 피아노 학원시간과 겹쳐 법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 미래는 운동회에서 스님들을 다시 만나자 반갑기만 하다. 일 때문에 부모님이 운동회에 함께 하지 못한 동호에겐 스님들의 응원이 힘이 된다. "매년 스님들이 운동회에 오시니까 너무 좋아요. 스님들이 부모님을 대신해 응원도 해주니까요."

눈을 가렸지만 너를 업으니 잘 보이네.


운동장 한쪽의 차양막 아래 자리를 잡은 스님들의 응원은 그야말로 열성적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법회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박수를 친다. 이날 하루만큼은 스님의 위의(威儀)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달리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사실은 아이들보다 스님들이 더 좋아하는 거 눈치 채셨죠?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모든 것을 잊게 돼요.” 모든 경기에 단골손님으로 불려나간 도명 스님(사교반)의 얼굴엔 땀이 맺혀 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스님들의 운동회에 아이들이 끼여든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스님들은 운동회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돼 있었다. 대교반 도현 스님은 "운동회에서 스님들과 함께 뛴 아이들이 청암사를 마음의 고향으로 느끼고 다시 찾아온다"며 "동심으로 돌아가 함께 즐기며 포교도 하니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몸은 여섯. 마음은 하나. 사진=고영배 기자.


이날 스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했다. 증산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태극권 동아리 스님들이 태극권을 선보였고 운동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사물놀이 공연을 펼쳤다. 청암사 태극권 동아리는 올 8월 전주에서 열린 태극권 국제 교류대회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우승컵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을 자랑한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명상음악을 배경으로 8식, 16식, 24식의 태극권 동작을 선보이는 스님들의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눈빛을 빛냈다. 종이꽃으로 장식한 고깔까지 운동회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풍물놀이를 선보이자 여기저기서 추임새가 흘러나오고 어르신들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스님들과 어우러졌다.

증산초등학교 전제훈 교장은 "아이들이 스님들이 함께 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며 "스님들과 아이들은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쉽게 친해지고 잘 어울려서 금방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증산초등학교의 운동회는 유명한 마라톤 감독인 정봉수씨를 배출한 마라톤 명문답게 증산초등학교에서 청암사까지 약 8km 구간을 달리는 마라톤과 증산면민 노래자랑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가을 운동회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청명하고 맑은 하늘, 휘날리는 만국기, 점심시간 엄마와 함께 까먹던 찐 계란이 그것이다. 증산초등학교의 운동회엔 청암사 학인스님들의 잿빛 승복과 맑은 웃음이 더해지고 있었다.
김천=글 천미희/사진 박재완 기자 |
2005-09-24 오전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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