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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과 화두는 같은가 다른가. 공안선과 화두선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공안은 왜 출현했으며,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선을 접해본 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법한 주제인 공안과 화두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돼 관심을 끌었다.
9월 15일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선학회(회장 현각) 월례발표회에서 인경 스님(명상상담연구원)의 ‘공안선과 화두선’과 박재현 경희대 강사의 ‘공안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 발표됐다. 인경 스님은 간화선 성립의 주역인 원오극근과 대혜종고의 선사상을 비교함으로써 공안과 화두의 의미를 규명했고, 박재현씨는 공안의 기능을 살폈다.
잘 다뤄지지 않아온 ‘공안’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도 이채롭지만, 두 발표자의 주제 접근 방식이 달라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 박재현씨는 종교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서 철학적으로 간화선을 접근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쳐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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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 ‘공안선과 화두선’
인경 스님은 <벽암록>과 <원오어록>, 대혜종고의 <대혜어록>을 통해 간화선을 정립한 이들 자신의 공안과 화두에 대한 견해를 파악하고자 시도했다.
인경 스님에 따르면 원오극근의 경우 <벽암록>과 <원오어록>에서 나타나는 공안 개념은 다소 상이하다. <벽암록>이 공안을 ‘옛 조사의 가르침, 선문답’으로 정의하고 공부하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 <원오어록>은 공안의 본질을 ‘그 자체 진리의 현현(現成公案)’으로 밝히고 있다.
두 책에서 나타나는 차이에 대해 인경 스님은 “<벽암록>이 공안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라면, <원오어록>은 직접적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자리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분석하며 두 책의 공안 개념을 통일적으로 해석, “공안은 현성공안으로 진리 자체를 보인 것이지만, 그것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이 있다면 그것을 결택해 수행의 길로 삼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인경 스님은 원오극근의 공안선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선대의 고칙공안을 활용해 학인들을 지도하는 공부법”으로 정의하며, “공안의 출현은 당(唐)대 마조·조주 스님 때 일이지만, 공안을 활용한 공부법(공안선)으로 발전시킨 것은 송대에 들어서”라고 분석했다.
원오극근의 공안선을 화두수행법으로 체계화시킨 이는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다. 원오극근과 대혜종고는 공히 화두를 “과거의 사건인 공안을 관통하는 핵심적 언구”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대혜종고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화두에 선사상적 의미를 부여했다. 대혜종고는 “공안은 과거의 단순한 기록에 불과하며, 진정 필요한 것은 절박한 자기문제로서의 화두”라고 강조하고, “화두의 본질은 의심이며, 화두에서 의심을 일으키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인경 스님은 “당대의 공안을 수행의 대상으로 활용한 것은 송대에 시작된 것으로, 공안의 성립을 공안선의 출현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재검토돼야한다"며 "화두선의 진정한 시점은 공안을 배격하고 화두 공부의 길을 마련한 대혜종고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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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경희대 강사 ‘공안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철학적 연구’
박재현씨의 발표는 공안에 대한 신비주의적 이해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됐다. 그는 먼저 “지금까지 공안이 주문처럼 신성하고 신비적인 것이어서 철학적 이해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왔는데, 이 같은 태도는 선불교 전반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를 차단함으로써 해석학적 회의주의로 귀결될 위험성이 크다”고 경계하며 “공안은 문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씨에 따르면 공안이 신비화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본래 공안이 만들어진 것은 “깨침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여부를 점검하는데 있어서 공공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선문답이 언어화되는 과정에서 언어화될 수 없는 현장성은 상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안은 그 자체로 진리성을 간직한 것으로 믿어졌고, 깨침을 이루기 위한 초역사적인 모범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는 것.
박씨는 원오극근의 <벽암록>이 이 같은 문제인식에서 저술된 것으로 분석했다. 즉 원오극근은 <벽암록>에 선문답 외에 ‘평창(評唱)’이라고 하는 공안해석 형식을 덧붙임으로써 문자선으로 치달은 공안선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립문자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당말에서 북송대로 이어지는 시대의 중국 지성계는 지적객관주의를 지향한 훈고학적 경향 속에서 나타난 ‘생기(生氣)의 부재’를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불교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으며 간화선이 돌파구가 됐던 셈이다.
박씨는 “간화선은 종교적 도그마에 대한 신봉과 기호로서의 언어에 내포된 지적 객관주의를 비판하고 경계함과 동시에 선문답이 가졌던 수행적 기능을 되살려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화선은 의단을 강조함으로써 수행주체인 ‘나’를 복권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씨는 “나로부터 비롯된 ‘왜?’라는 질문과 함께 공안과 수행자 사이의 일방통행은 쌍방통행으로 바뀌고, 지적객관주의 속에서 사라져버린 수행주체인 ‘나’가 복권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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