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그렇게 떠나보낸 후 다시 기도를 하러 나갔다. 하루 종일 사찰에 머물며 기도하고 저녁에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 와중에 공부에 대한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내게 힘든 일이 많이 닥치니 오히려 부처님 가르침을 조금씩 알아가고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일찍 결혼한 탓에 사회경험이 전혀 없었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았는데 갑자기 남편이 떠나버리고 나자 살길이 막막했다. 그렇게 1년가량을 그냥 흘려보내고 나니 마음만 너무 조급했다.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이렇게 놀고먹으면서 돈만 축내며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고민하다 아파트 상가를 하나 분양 받았다. 주위 사람들이 거기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고, 또 당시는 경기가 좋을 때라 장사도 잘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은 돈을 긁어모으고 모자란 것은 대출 받아 가게를 시작했는데, 기대만큼 가게 매출은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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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수중에 단돈 5만원만 있어도 걱정이 안 되고 살만해졌다. 전에는 이런 상황이면 스트레스와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주 예민해졌고, 일찍 세상을 뜬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왜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리지 않는지 화도 나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마음자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위기를 한 번씩 넘겨보니 ‘아! 삶이 내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고통도 내가 겪을 수 있는 만큼만 주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음이 그러니까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결국은 그 자리에서 다 해결이 되겠구나’하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자광사 국제선원엘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가서 보니 그동안 나를 묶어놓고 어떤 틀 속에 가두려고 했던 나로부터 너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큰스님이 쓰신 책들을 읽을 때는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정말 밝고 기쁜 환희심 속에서 아침을 맞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도반인 항복심 보살 덕분인데, 내게 마음공부를 권유해주기도 하고 수요 공부팀을 만들어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항복심 보살과의 인연으로 자광사에서 공부도 시작하게 됐고, 지금은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도 할 수 있게 됐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새벽공부를 하고 경전을 읽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고 결과물인 듯이 살았던 것 같다. 그런 공부들이 내가 수행해 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과정이고 방편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 들여다보는 원리를 터득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기도와 독경에 매달려 그걸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안달한 것이다. 늘 밖에서 부처님을 구하려고 하고 기도를 통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며 부처님을 상대로 무언가 흥정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늘 공경하는 마음을 갖자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이런 공부를 합니다’ ‘나는 수행자 입니다’라는 아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원에 나가게 되면서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게 됐고, ‘아! 이게 둘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다 일어나는 것이고 바로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로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마음을 관하면서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 줄 알고, 남의 마음을 가지고 탓하거나 시비하지 않고, 또 그런 이치들을 알게 되니까 남에게도 별로 화낼 일이 없어지고 마음이 안으로 많이 향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큰 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늘 ‘빨리 나아야 될텐데’하면서 건강해지는 원을 세웠다. 그런데 어떤 공부 모임에 갔더니 스님께서 공부를 하면서 ‘어떤 의도도 붙이지 말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래서 손을 번쩍 들고 ‘그러면 내가 낫겠다고 원을 세우는 것도 안되냐’고 여쭈었더니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이 몸 자체를 ‘나의 몸’이라는 실체로 인정하고 있으니 병이 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나’라는 이 모습들도 고정됨이 없이 변해가고 있는데, 그 변화가 너무 미세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어떤 것을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동안 ‘예전에는 건강했는데 왜 아플까’ 하면서 이미 나는 환자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으니까 내가 계속 병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몸이랄 것도 없는 몸뚱어리에 병이라는 것을 붙여놓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아픈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게 됐다. 작년부터 갱년기가 시작되는지 무릎이 너무 아파 자면서도 몸을 뒤척이기 힘들어 신음소리가 절로 나고, 어깨도 너무 아파 파스를 붙이고 침도 맞았다. 하지만 몸을 관하면서 아픈 곳을 찾아 아무리 봐도 아픈 곳이 없었다. 무릎에 대고 ‘아픈 곳을 내놔봐라’ 그래도 어디도 아픈 곳이 없었다. 아픔의 실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내가 계속 내 몸이 진정한 나인 양 주장하고 있으면서 아픔을 붙여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는 아픔이 사라졌다. 몸이 아주 가벼워짐을 느꼈다.
지금도 신장 때문에 약을 먹고 있지는 하지만 전처럼 빨리 나아야 하는데 왜 안 낫나 하는 마음은 없어졌고 몸의 컨디션도 많이 좋아졌다. 내 병은 만성신부전증이라 특별히 증세가 호전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런 변화를 보고 의사 선생님도 놀라 ‘집에서 뭐 특별한 것 하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럴 땐 난 ‘마음이 해결했다’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얘기를 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 그저 웃기만 한다.
요즘에는 감사하게도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별로 걸릴 것도 없어져 아주 편안하고 밝다. 이 모든 일에 부처님 가르침 덕분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