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술발표회의 계절이다. 발표자에게 학술발표회는 자신의 최근 연구성과를 공개하고 검증받는 자리며, 청중들에게는 최신 연구동향을 가늠하며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이 같은 학문적인 소통은 불교학이 한층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자리다. 하지만 학술발표회는 언제부턴가 찾는 이 없는 ‘그들만의 잔치’가 돼버려, 학문적인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썰렁한 학술발표회
현재 활동 중인 불교학회로는 한국불교학회·불교학연구회·한국선학회·보조사상연구원·인도철학회·한국선문화학회·한국정토학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몇 곳은 춘·추계 학술발표회 외에도 월례발표회를 개최할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학회 수나 학술발표회 빈도수 면에서 불교학계는 인문학 분야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학술발표회 현장을 가보면 그 썰렁함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청중은 20~30명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발표자와 논평자 그리고 학회 임원과 진행자일 정도로 불교학계 학술발표회는 참여율이 저조하다.
주최 측은 논평자를 두 명씩 붙여 참석을 유도해보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불교학 연구자가 가장 많은 동국대에서 학술발표회를 열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 동국대에 재직하는 교수들조차도 참석해서 함께 하는 이는 드물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같은 현실에서 학술발표회의 의미는 당연히 반감되기 마련이다. 발표 주제와 유관한 전공자가 참석하지 않다보니 학술발표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과 토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 발표논문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토론 없는, 맥 빠지고 형식화된 학회가 돼 청중의 외면을 받게 된다.
중진학자들이 참석하지 않아 학술발표회가 박사과정 또는 갓 박사를 받은 이들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점도 문제다. 중진학자들이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학문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면서 신진학자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중진학자들의 무관심 속에 불교학계는 신진학자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신구간의 조화를 저해하고, 중진학자들의 노쇠화를 촉진한다.
이처럼 학자들조차 학술발표회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학자들은 “참가해야 할 학술발표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학술발표회를 다 찾아다니기 벅차다는 것이다.
최연식 목포대 교수(불교사상사)는 “학술발표회가 많아지면 불교학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발표논문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위험성 또한 크다”고 지적했다. 불교학 관련 박사가 160여명인데, 그 가운데 학술발표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이들은 대략 60명 내외. 이 적은 인원이 10여개에 달하는 학회의 행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는 같은 논문을 재탕해서 발표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히 학술발표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학술발표회의 질 저하 및 학회의 차별성 약화를 낳는다. 궁극적으로 학회의 존립 근거에 대한 위협요인이 된다.
하지만 학술발표회가 많고 적음에 앞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학자들의 기본자세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평래 한국불교학회장은 “다른 학자들이 애써 연구한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동참해서 질문하고 격려하는 것은 학자의 도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학회의 차별화가 관건
학회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학회 성격과 운영방식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불교학)는 “학술발표회의 주제는 전문적인데 대중적인 방식을 지향하다보니 부조화가 발생한다”며 “학술발표회의 성격을 전문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으로 명확히 구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적인 주제라면 소수 전문연구자만이 참가해서 집중적인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대중적인 주제라면 공감대가 넓은 이슈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다수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학술발표회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학회가 전문화돼 차별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불교사만 다룬다든지, 불교생태철학만 다룬다든지 하는 특정 주제로 특화돼야 한다. 반면 대중화를 지향한다면 이슈 개발이 관건이 된다.
윤원철 서울대 교수(종교학)는 “현행 불교학 주제들은 지나치게 교학 중심이어서 이슈 개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대중과 유리되지 않은 불교학이 되기 위해서는 신행과의 연관성을 감안한, 이슈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의 차별화가 어렵다면 유사한 학회들을 통폐합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불교학자들은 “학술발표라도 공동으로 개최해 활발한 참여와 논문의 질적 제고를 유도하는 것이 불교학회 활성화에 도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회 어떻게 운영되나
현재 정기적으로 학술활동을 하는 불교계 학회는 10여곳 내외. 이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한국불교학회를 비롯해 불교학연구회·한국선학회·보조사상연구원 등이 활발하다. 이들 불교학회는 인문학 전반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춘·추계정기학술대회와 워크숍, 월례발표회 등을 열고, 학회지를 펴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학회당 이 같은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략 연간 3천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회원들의 회비 납부율은 저조해 회비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낮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불교학회의 활동은 놀라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학계의 이 같은 저력은 학회를 꾸려가는 임원들의 큰 원력과 드러내지 않은 불교계의 성원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불교학회(회장 이평래) 홈페이지(www.hanbulhak.or.kr)에 올라와 있는 후원금 내역은 불교계가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회의 차별화가 어렵다면 유사한 학회들이 학술발표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불교학자들은 “학술발표라도 공동으로 개최해 활발한 참여와 논문의 질적 제고를 유도하는 것이 불교학회 활성화에 도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