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를 떠나는 순간, 아니 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당선자로서의 기쁨은 다하고 숱한 번민과 고뇌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총무원장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종단과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고뇌를 받아들이겠습니다.”(2003년 2월 24일 총무원장 당선 소감문 중)
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법장 스님. 스님은 ‘숱한 번민과 고뇌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스님은 취임 100일을 맞아 제31대 총무원 종책기조 및 중점종책과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법장 스님은 ‘함께 하는 종단, 신뢰받는 종단’을 구현하기 위해 4대 종책 기조 아래 31개의 구체적 사업을 제시했다. 4대 종책 기조가 바로 △수행종풍 진작으로 거듭나는 종단 △참여 속에 함께하는 원융종단 △종도와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종단 △미래를 지향하는 효율적인 종단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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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또 종단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승려노후복지를 위해 ‘자비의 보험금 나눔 운동’을 펼쳐 약정금 20억여 원을 확보했다. 10개 교구본사에 실비노양시설 설립을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시켰고, 세납 65세 이상 스님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승려노후복지 대책팀을 구성했다. “스님들의 노후가 보장되지 않으면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종단이 안정될 수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종단의 근간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승가교육제도개선 사업도 추진했다. ‘승가교육개선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수차례 논의를 통해 승가교육개선안을 마련한 다음 현대적인 승가교육체계의 단초를 마련했다. “제대로 된 성직자가 되기 위해선 기초교육이 탄탄해야 한다”는 스님의 소신이 짙게 배여 있는 대목이다.
2004년에는 승풍 진작과 종단 위계질서 확립 차원에서 그 동안 끊겼던 대종사 법계 품서를 거행했다. 종지종풍 선양을 위해 종도 도의 국사 다례재를 봉행했을 뿐 아니라 〈조계종사〉 고증 세편을 발간해 종단사 정립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종단의 실질적인 화합과 중앙과 교구본사 간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처음으로 교구별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방의 소리를 현장에서 청취한 뒤 종무에 반영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소년소녀가장 돕기 1사찰 1가정 결연 후원 운동을 전개할 때다.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과 국장들이 종로구청 내 소년소녀가장과 결연할 때, 스님은 당신부터 결연한 소년소녀가장에게 대학 진학 시까지 장학금 지원을 약속했다. ‘말’ 보다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불사에 남다른 노력
법장 스님은 총무원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리며 각종 ‘불사’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총무원장 당선 후 스님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추진했던 불사는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 한국불교 미래를 개척해 나갈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는 3년간 국고 122억원, 자부담 122억원 등 총 244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돼 대지 9천여평 건물 4천여평으로 조성된다.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는 조계종 스님 및 신도, 불교단체, 문화예술단체들의 교육과 연수를 개발ㆍ유치하게 된다. 또 무형의 유산을 문화산업으로 개발할 뿐 아니라 국제간화선 체험센터를 운영, 한국 선불교사상을 내ㆍ외국인들에게 전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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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부처님 뜻을 펴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역대 선지식의 인연처였던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현지에서 대웅보전 낙성식을 봉행했다.
남북한 화합과 통일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신계사 복원불사는 2007년까지 만세루, 3층 석탑, 요사채 복원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법장 스님은 낙성식에서 “소실되었던 신계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화합과 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고 복원 의의를 밝혔다.
지진해일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국민들을 위해 ‘자비의 탁발’로 20여억 원을 모금한 것은 종단 초유의 일로 기록될 만 하다. 부처님 당시 탁발 정신을 되살려 전국 교구본말사 스님들이 직접 저잣거리를 다니며 탁발을 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 5월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 ‘조계종 마을’을 건립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라투나푸라 지역에 건립된 조계종 마을에는 총 2억6천만 원의 ‘자비의 수재성금’이 투입돼 마을회관, 법당, 설법전, 보건소 등이 마련됐다.
조계종은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에 고아원과 양로원을 포함한 현대식 종합복지센터를 건립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건립해 가칭 ‘코리안 부디즘 타운’을 만들 생각이나 법장 스님 원적으로 이 또한 불투명해 졌다.
법장 스님은 조계종의 총본산 격인 조계사와 총무원 성역화 사업을 이끌었다. 2004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차 준공식을 완료했으며, 1달 뒤에는 전체 공사를 회향하는 준공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총본산성역화불사기금 10억여 원도 모금해 향후 성역화 불사의 재정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 여름에는 박물관 수장고 공사를 완료해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기반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 공사 문제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공사 입찰부터 법장 스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관여된 부정과 비리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월간중앙’ 사태 등 원적 전까지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 국내외 사회활동 활발
“부처님은 사람들이 강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영토 싸움을 할 때 강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하시며 싸움을 말렸다. 핵 포기는 모든 인류의 희망이지만 이는 성급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포기시킬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2005년 5월 미국 정부 대북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법장 스님은 생전 ‘1달에 1만km’를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대외 활동이 왕성했다는 증거다. 특히 원적에 들기 전 가장 활발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원적에 드시기 전 미리 다 둘러보고 가시려고 그렇게 바쁘게 다니셨나 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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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법장 스님의 사형인 설정 스님(전 중앙종회의장)이 “종단 외부 문제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종단 일이나 잘 처리하라고 당부하면 법장 스님은 ‘승속이 따로 없다. 우리 종교계를 대표해 불교계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며 회고했다.
법장 스님의 이라크 방문 시 여러 가지 견해가 상반됐다. 민간 지도층 인사 최초로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이라크 자이툰 부대 성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법장 스님은 “나는 순수하게 종교인으로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라크인들의 재건과 평화를 위해 노고가 큰 우리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 장병 여러분의 정성을 다한 활동이 곧 부처님의 자비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장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법장 스님은 백악관과 국무성 고위 관리들을 연쇄적으로 만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 회담 재개를 설득한 일은 국가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법장 스님은 방문 중 미국 고위 관리들을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디트러니 북핵 대사는 “스님의 말씀과 강렬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지속적으로 한미동맹의 결속을 다지고 종교 분야의 역할에 대해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8.15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명예대표로 방북해 남북간 화합의 마당을 마련한 것 또한 의미 있는 일로 평가받는다. 현직 총무원장으로는 최초로 방북했을 뿐 아니라 안경호 북측대표를 만나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대화로 풀어갈 것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등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법장 스님이 축전 개막행사에서 10만여명의 평양 시민들의 향해 ‘남북이 손잡고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가꾸어 나가자’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이에 대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매우 감동적인 연설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장 스님 이 외에도 대만을 방문해 포광산쓰 싱윈 대사와 만나 한국-대만 불교우호교류 협력방안을 이끌어 냈다. 또 강제 징용된 한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할린을 방문,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왔다.
‘함께 하는 종단, 신뢰받는 종단’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를 마다하지 않고 바쁜 걸음을 했던 법장 스님. 스님은 원적 전 시자 진광 스님에게 평소 법문할 때 즐겨 인용하는 글귀를 적어줬다.
“아유일발낭(我有一鉢囊,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무구역무저(無口亦無底, 입도 없고 밑도 없다) 수수이불람(受受而不濫,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출출이불공(出出而不空,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2005년 9월 11일 오전 3시 50분 경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입도 없고 밑도 없는’ 바랑에 담고 원적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