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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ㆍ정묵ㆍ법안 스님의 회고【37신】

3인이 회고하는 법장 스님


사형 설정 스님과 상좌 정묵 스님, 그리고 종무를 받들었던 기획실장 법안 스님은 9월 12일 총무원 2층 기자회견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법장 스님의 생전인연을 회고했다.



수덕사 수좌 설정스님


설정 스님.
▥법장 스님의 출가시절은?
=개인적으로 법장 스님과 나는 은사 원담 스님 문하로 5년차를 두고 출가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제로 오래 기간 애틋한 정을 나눴던 관계다. 어린시절 법장 스님은 약하고 말랐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오셨을 무렵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던 모습이 선하다.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수행에 소홀해질 수 있는데 한번도 예불이나 참선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법장 스님은 어떤 분이셨나?
=생전의 법장 스님을 나름의 신념과 소신이 뚜렷하신 분이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셔서 잠은 서너 시간 이상을 주무시지 않으셨다. 인간관계에서도 남녀노소 부자거나 가난한 이나 누구도 가리지 않고 만나셨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만나는 모습을 주위에서 지켜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날 정도였다. 승속가리지 않고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대하셨다. 수덕사 주지를 15년 하면서 자기개인통장은 하나도 없었다. 유품정리를 하면서도 남은 건 지인들이 병원비에 보테라고 준위문금 조금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위문금 일부를 입원해 계시는 종정스님에게 드렸다.

▥은사 스님은 알고 계신가?
=방장 원담 스님께는 아직 말씀 못 드렸다. 개인적으로 은사 스님이 당분간 알려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본사 주지 정묵 스님 (맏상좌)


정묵 스님.
▥법장 스님의 병세는 어땠나?
=은사 스님은 14년 전 충남병원에서 심장수술을 하신 적이 있다. 2달 정도 치료를 했는데 완치는 되지 않으셨다. 이번에는 막혔던 심장의 혈관 2곳을 뚫는 수술이었다. 오랜 지병이라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파 수술실에는 차마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시자가 들어갔다. 가슴이 찢기는 듯한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

▥입적 전 남기신 말씀은 없었나?
= 입원하실 때부터 마지막 입적 전까지 사제 도신 스님하고 같이 모셨다. 수술 전 은사 스님은 한라산을 가시고 싶어 하셨다. 종단 소임자들과 재가 종무원, 조계사 식구들과 꼭 한라산을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수술실에서 시자를 통해 모든 여러 가지 쓰시던 물건(수덕사 토굴방문 열쇠 등)을 저에게 전하셨다. 지금 입고 있는 장삼도 이번에 은사 스님이 물려주신 옷이다. 24년째 한번도 은사스님을 벗어나 살아온 적이 없는데 오늘 죄인의 심정으로 이런 자리에 서게 됐다.

▥법장 스님의 인연은?
=은사스님을 처음 뵌 것은 열 살 무렵 친척스님의 손을 잡고 수덕사로 갔을 때다. 따스한 손길로 나를 거두어 주시고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은사스님은 제게 엄격한 스승이자 자애로운 어버이 같은 분이셨다. 저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은사스님과의 인연으로 불법을 만났다. 상좌는 약 40명 정도다. 속가 상좌로는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평소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이 있다면?
=매사에 안팎으로 막힘이 없으시고 표리일체하셨다. 일생동안 수덕사의 가풍을 실천해 오신 분이시다. 입지여산(立志如山)하고 안심사해(安心四海)하라는 말씀을 늘 하셨다. 출가자가 원력을 세우고 수행을 할 때는 뜻을 산과 같이 세우고 마음은 큰 바다와 같이 쓰라고 하셨다. 특히 생사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한번 일어남이 태어남이요 마음한번 사라짐이 죽음이라 순간이 영원과 같음을 알고 최선을 다하라 당부하셨다. 은사 스님의 유지를 따르기 위해 문도들 모두가 신명을 바쳐 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 나갈 것이다.



기획실장 법안 스님


법안 스님.
▥종단 소임자들의 충격이 크지 않나?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면서 조금씩 현실로 느껴진다. 막상 병원에 입원을 하시던 날까지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수술직전에 종단 소임자들에게 따로 말씀을 남기시겠다고 하셨지만, 큰 수술을 앞두고 큰스님에게 부담을 드릴 것 같아 일부러 뵙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믿기지 않는다.

▥재임 중 기억에 남는 일은?
=2002년 2월 취임후 2년 7개월을 재임했던 법장 스님은 수덕사 시절부터 입적 전까지 정말 불꽃같은 시간을 보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종무를 보아오셨다. 법장 스님의 31대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종무시스템의 변화도 많았다. 비구니 스님의 부장을 맡았고 포교원 교육원에 국장석에 비구니 스님들을 중용했다. 논란 속에서도 개방적 종무행정의 틀을 다지셨다.
입적하시기전까지 교구본사의 자치권한 확대와 승려노후복지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도입에 많은 신경을 쓰셨다. 뿐만 아니라 부ㆍ국장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종무행정의 틀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공을 기울였고 실제로 상당부분 도입이 되어가던 중이었다. 종무 내적으로는 외부 감사 시스템의 도입 등 많은 변화를 이끄셨다.

▥법장 스님의 유지가 있다면?
=늘 관심이 크셨던 분야가 사회복지였다. 그 가운데서도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렇게 스님의 도움을 받아 자라난 아이들이 많다. 영결식 날 스님의 도움을 받았던 한 아이가 직접 조사를 하겠고 해서 식순에 반영하려고 한다. 장례위원회로 들어오는 모든 조의금은 (사)생명나눔실천회와 스님들의 노후복지기금으로 전액 사용하기로 했다. 끝까지 모든 것을 회향하시려했던 스님의 유지를 받들 것이다.
조용수 기자 |
2005-09-12 오후 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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