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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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닌 하나의 자리 上
신행수기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기는 했지만, 1989년 전까지 불교는 내게 그저 부처님오신날이나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찾아가는 마음의 안식처일 뿐이었다.

그런데 89년 봄, 불교와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그해 봄에는 내 마음 속에 답답함과 왠지 모를 짜증이 가득 찼다. 주위의 환경이 특별히 변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마음속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그때는 내 마음상태가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자꾸 화가 나서 스스로 불안해지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이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몇 달이 흐른 후 우연히 친구와 함께 어떤 법회에 참가했고, 그 인연으로 불교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해 처음엔 아주 치열하게 공부에 매진했다. 처음 3년 동안은 가정법회를 열었는데, 신도들의 집에 돌아가면서 법회를 열었다. 이때 배운 공부 방법은 경전을 읽고 마음 비우는 것이었는데, 그게 결국 내 마음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늘 염불 정진을 끊이지 않고 했다.

사실 불교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별 모자람 없이 어려운 것도 모르고 살았다. 남들이 볼 때는 전혀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집안에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 겪은 일은 아주버님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 남편이 보증 서준 것과 본인 명의로 대출 받은 돈 등 수천만 원의 빚을 안게 된 것이다. 남편 월급이 차압을 당하네 마네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결국 월급 차압은 당하지 않았지만, 생활하면서 그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는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그러면서 마음이 아주 궁핍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전까지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무얼 하나 사려고 해도 이걸 사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갈등하게 되니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다음 달부터 시작한 일이, 매달 절에 내던 보시금을 두 배로 올린 것이다. 내 궁핍한 마음을 닦으려고 한다면 내가 무언가를 크게 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돈을 낼 때는 ‘이 돈이 이 만큼 큰 돈인데 이걸 내고 무리 없이 살 수 있을까’하는 마음들이 올라 왔지만 ‘내 마음 연습이다’하고 마음을 다지면서 보시금을 냈다. 그러다 보니 낼 때는 굉장히 큰돈 같은데 그걸 떼서 내도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문득문득 “나는 알뜰하고 착실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큰소리로 경을 읽고 마음을 들여다보길 반복했다. 독송을 하다보니 이 일은 내가 갚아야 할 어떤 업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일로 홧병까지 나면 사람 잃고 병 얻는 것 밖에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나니 빚을 다 갚을 수 있었고, 오히려 마음그릇은 더욱 커진 것 같이 아주 여유로운 마음이 됐다.

그 다음해에는 셋째 아주버님이 간암 판정을 받는 일을 겪었다. 셋째 아주버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태였고 잠깐 귀국해 있는 동안 입원을 하게 돼 갈 곳이 마땅히 없는 상태였다. 문안 차 병원에 들렀다가 저희 집이 따뜻하니 와서 계서도 된다고 했더니 1주일 뒤에 짐을 싸서 내려 왔다. 그래서 마지막 한 달을 모셨고, 그러다 우리 집에서 돌아가셨다. 직접 임종을 봐 드리고 장례를 모셔드렸다. 당시는 젊을 때라 힘도 세고 몸과 마음이 굉장히 건강한 편이라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잘했다. 때문에 당신에는 그렇게 힘든 일인 줄도 모르고 큰일을 치러낼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빚을 갚고 셋째 아주버님이 돌아가시고 게다가 큰 아이가 대수술을 받는 일까지 겪으며 정신없이 세월이 흘렀다. 이제 힘든 일은 모두 끝난 것만 같았다.

그러던 93년 어느 봄날, 남편이 병원에 같이 가자면 낮에 집에 왔다. 처음엔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밤에 더 많이 아프다고 해서 응급실로 갔다가 충남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그곳에서 남편은 셋째 아주버님과 마찬가지로 간암 판정을 받았다. 암이라고는 해도 겉으로는 환자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평상시에도 별로 아픈 적이 없는 사람이라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당시에는 남편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뜰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담당 의사가 수술도 잘 됐다고 하고 퇴원 후에도 건강하게 살았는데 1년 쯤 지나고 나니 얼굴색도 안 좋고 매사에 힘들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늘 공부할 때면 ‘이 불법(佛法)이면 금생 성불은 물론이고 그 공부로 인해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젊은 날의 치기였던 것도 같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시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자 의사가 부르더니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울면서 법사님께 전화했다. 법사님께서는 “나만 믿어라, 내가 기도하면 나을 수 있다, 부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살려 주실거다”라고 얘기하실 줄 알았는데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거다”라고만 말씀하셨다. 법사님께서는 “지금껏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서 그것도 몰랐느냐”고 하시면서 “상대방이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것을 공부거리 삼아서 공부를 해봐라”고 당부하셨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 밖에 없어 정말 기도를 열심히 했다. 마음이 다른 데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모아서 기도했다. 그 기도 덕분인지 남편은 많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입원한 지 3주 만에 몸을 벗었다.

그렇게 한마음으로 기도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공부의 본질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도가 어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내 마음가짐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조성란(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
2005-09-15 오전 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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