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조선시대 19
이 시기는 다음 시대에 차문화를 꽃피울 인물들이 속속 태어난 때다. 박제가 이서구 정약용은 새로운 학문을 추구한 선비차인으로, 이들로 인해 우리 다사(茶史)의 중요한 기점에 이르게 된다.
특히 다산은 신유박해 때 강진으로 유배되어 다산 기슭에서 지내며 아암 혜장을 만났고, 후에 초의선사를 만나 가르쳐 초의선사가 중앙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산의 <동다기(東茶記)>의 내용은 확실치 않으나 그의 다법(茶法)만은 자하에게까지 전해졌음이 밝혀졌다. 또한 영수합 서씨나 빙허각 이씨 등 여류 차인들도 많았으며 홍인모 등의 가정은 다풍(茶風)이 아름다웠던 집이다.
중국도 돈재 서곤이 차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고, 용정차가 널리 알려져 그에 관한 기록이 많다.
① 박제가(1750~?): 박지원의 문하로 중국에 네 번이나 다녀왔고 그곳의 문인들과 교유한 차인이다. <북학의(北學議)>에 실학사상을 담았다.
② 영수합 서씨(1753~1823): 홍인모의 부인으로 차인이었다. 자녀들 모두 차를 즐겼고 그의 다시 여러 편이 전한다.
③ 홍인모(1755~1812): 우부승지를 지냈고 경사, 음약, 의약에 통달했으며 차를 즐겨 여러 편의 다시를 남겼다.
④ 이상계(李商啓)가 쓴 가사로 ‘월하팽다(月下烹茶)’를 노래했다.
⑤ 빙허각 이씨(1759~1824):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썼다. 여기에 차를 생활과 연결한 다백희(茶百戱), 대용차, 다식, 다선고(茶仙姑) 등의 얘기를 담았다.
⑥ 정약용(1762~1836): 정치, 경제, 지리, 경학의 대가일 뿐 아니라 우리 차문화의 중흥에 태산북두(泰山北斗) 같은 차인이다. 초년부터 차를 즐기다 강진 유배 후 아암 스님을 만나 차에 깊이 빠졌다. 이후 초의를 가르치고 <동다기>를 썼다. 해배 후 저서가 오십여 권에 이르며, 그 중 차에 관한 것도 많다. 특히 그가 만든 다신계절목과 다신계는 훗날까지 지속되었다.
⑦ 조수삼(1762~1849): 여섯 차례나 중국을 왕래하며 시명(詩名)을 떨쳤다. 문집에서 해남에 황차가 있다고 했으며 다시 수 편이 전한다.
⑧ 전조망(全祖望)이 쓴 글로 열두 가지 뢰차에 관해 기록했다.
⑨ 서곤(徐崑)이 쓴 글로 민중(민中)에 있는 정씨댁 차나무 두 그루의 향이 천하의 으뜸이라 했다.
⑩ 정육(程육)이 항주 추심루(秋心樓)에 살면서 쓴 용정차에 관한 얘기다.
⑪ 정의증(丁宜曾)이 쓴 것으로 음식을 먹을 때 차를 중심으로 향(香)을 가한다고 했다.
⑫ 장홍(張泓)이 쓴 것으로 이 글에 보이차 얘기가 실려 있다.
⑬ 왕응규(王膺奎)가 쓴 것으로 하살인향차라는 벽라춘(碧羅春)에 관한 얘기가 들어있다.
⑭ 청대 시승(詩僧) 초전(超全)이 지은 것으로 송대 이후 오이(五夷)의 차가 발전한 정황을 내포하고 있어 오이의 다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⑮ 왕맹현(汪孟현)이 용정차에 관한 쓴 것이다.
16 석주류(石州流) 불매파(不매派)의 시조다.
17 산차 제다법이 설명된 책이다.
18 대지유방(大枝流芳)의 지대아(池大雅)가 쓴 일본 최초의 전다(煎茶) 안내서다.
<한국>
1750 박제가(朴齊家)의 출생 ①
@ 심사정의 활동
1753 영수합 서씨(令壽閤 徐氏) 출생 ②
1754 이서구의 출생
1755 홍인모(洪仁謨) 출생 ③
1758 초당곡(草堂曲) ④
1759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⑤
1762 정약용(丁若鏞)의 출생 ⑥
조수삼(趙秀三)의 출생 ⑦
1763 <일동장유가>
<중국>
@ <십이뢰다조부서(十二雷茶조賦序)> ⑧
1753 <돈재우필> ⑨
@ <용정방다기(龍井訪茶記)> ⑩
1755 <농원편람(農園便覽)> ⑪
<전남신어> ⑫
1757 <유남속필(柳南續筆)> ⑬
@ <오이다가(五夷茶歌)> ⑭
1762 <용정견문록(龍井見聞錄)> ⑮
<일본>
1751 송평치향(松平治鄕)의 출생 16
1754 <일본산해명물도회(日本山海名物圖會)> 17
1755 선과소각어(仙과燒却語)
1756 청만다화(靑만茶話)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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