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 이하 편찬위)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이 8월 29일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은 해방 후 처음 이뤄진 친일 인사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준의 적절성에 대한 시비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선정기준은 무엇
편찬위가 정한 친일불교인의 판정 기준은 “조선불교단·조선불교중앙교무원·총본산건설위원회·조선불교총본사설립위원회·조선불교조계종총본사 등의 핵심간부, 일본불교시찰단 복지황군위문단 참여자, 친일논설 또는 부일협력 강연회 반복 참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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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총독이 임명하는 31본산 주지를 맡았다 해도, 불가피한 측면을 인정해 본산 주지를 친일인사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일단체의 핵심간부 경우에는 그 자체로 친일 의지를 갖고 활동한 것으로 간주해 친일인사에 포함시켰다.
편찬위의 선정 기준에서 문제 소지가 있는 부분은 친일단체의 범주. 편찬위는 조선불교중앙교무원·총본산건설위원회·조선불교총본사설립위원회 등을 친일단체로 봤다.
근현대불교사 연구자 박희승 씨는 “조선불교중앙교무원 등의 단체들은 교단에 준하는 것으로서, 이들 단체가 친일단체로 규정되면 조선불교까지도 부정되는 셈이다“며 ”그렇게 따지면 조선불교 지도자가 모두 친일인사가 되고 말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반면 한동민 씨(수원시 전문위원)는 “1911년 사찰령이 공포된 이래 총독부가 불교계를 주도면밀하게 관리해온 탓에 교단 자체가 친일화된 측면이 있어 친일단체 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친일을 바라보는 불교계 내부의 시각이 새로이 정립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경집 진각종종학연구실 상임연구원은 “일제시대를 살지 않았던 우리들이 그 당시를 평가할 때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며 “친일문제에 대한 불교계 나름의 잣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고 스님은 “억불책으로 조선시대 500여 년간 사람대접조차 받지 못하던 스님들에게 호불(護佛)은 매우 중요한 가치였다”고 전제한 뒤, “이런 상황에서 스님들의 호불 행위는 친일로 비쳐질 소지가 있었다”며 “‘친일-항일’이라는 잣대뿐 아니라 ‘호불(護佛)-배불(排佛)’이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불교계 반응은
이번 친일인사 선정과 관련한 반발 움직임은 지암·구하 스님의 문도 사이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들은 위장친일의 개연성과 시대적 특수성을 감안해서 친일여부 판단을 재고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계종·태고종 등 주요 종단의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지암불교문화재단을 세우고 지암 스님(이종욱)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성담 스님(지암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은 “지암 스님은 조계종단을 세우고, 조계사를 건립함으로써 오늘날 조계종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라며 “타종교들이 일본단체에 종속되는 상황에도 한국불교가 독자종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을 보면 지암 스님의 친일은 위장된 것으로 봐야한다”며 친일인사로 분류되는 데 대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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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 부천대 교수는 “구하 스님과 지암 스님은 항일과 친일의 두 얼굴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이들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고민거리”라며 “사료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진면목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찬위 측은 “두 스님이 1920년대까지는 항일 행적을 보이지만, 중일전쟁 이후에는 친일행적만 보이고 있어 변절자로 간주된다”고 밝히며, “새로운 사료를 제시해오면 기꺼이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도들의 반응과 달리 종단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64명에 달하는 불교계 인사들이 친일인사로 규정된 것을 감안할 때 무반응은 다소 의외다. 천도교의 경우 (사)동학민족통일회가 중심이 돼 29일 신속하게 참회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침묵의 배경에는 참회의 주체가 누가 돼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엇갈린 시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고 스님은 사견임을 전제로 “오늘의 조계종은 정화를 통해 친일불교를 청산했기 때문에 친일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태고종 사회부장 법현 스님 또한 사견으로 “일제말기 조계종단은 분규 이전의 승단으로서 태고종과 조계종의 공통된 ‘조상’”이라며 “불교계가 함께 연구해서 사실을 밝혀내고, 잘못이 드러나면 함께 참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왜 불교계 인사가 가장 많을까
명단에 포함된 총 157명의 종교계 인사 가운데 불교계는 63명으로, 개신교(48명), 천도교(25명), 유교(14명), 가톨릭(7명) 을 양적으로 압도한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가 더 친일적이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친일인사 선정 기준에 있다. 이번 선정에는 친일단체의 핵심간부, 친일논설 발표자, 부일협력 강연회 반복 참여자 등이 우선 고려됐는데, 당시 교세가 컸던 불교계에 단체가 더 많았고, 그에 비례해 핵심 간부도 많았기 때문. 개신교에 상대적으로 친일인사가 많은 데는 다양한 교파로 구성된 개신교의 조직원리 영향이 크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가톨릭은 불교보다도 더 일제에 순응적이었지만 친일인사가 7명밖에 포함되지 않았듯 친일인사의 다과(多寡)가 종교의 친일 여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