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찻그릇 흙에서 불까지’
정동주씨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 출간
| ||||
그러나 우리 차 문화 연구에 천착해 온 소설가 정동주씨는 최근 출간된 저서를 통해 “과연 우리시대의 찻그릇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조선시대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전통도예는 단절되다시피 했고, 해방 이후 이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아직도 우리 도예문화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정씨는 책에서 우리나라 도예문화의 역사와 그 속에서 찻그릇의 발달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의 찻그릇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해방 이후 한국 전통 도예사에서 2세대, 3세대로 분류되는 도예가 14명의 작품세계를 조명함으로써 우리 도예사의 현재와 미래 한국 찻그릇의 전망을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정씨가 말하는 우리나라 찻그릇 역사의 흐름과 문제점은 무엇일까?
| ||||
▷해방 후 전통도예 부활을 위한 시도
해방 후 빠른 속도로 침체돼 가는 전통 도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1955년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세워졌고, 56년에는 현대생활에 적합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한국미술연구소가 세워졌다. 이 두 곳은 60년대 한국 전통 도예를 개척한 핵심 인물을 배출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또한 정부의 ‘전승 도예 정책’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발굴했고, 물레를 잠시 떠났던 사람이나 새롭게 물레질을 배우려는 이들을 물레 앞으로 불러 모았다.
60년대 중반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차 문화가 조금씩 싹터 찻그릇에 대한 논의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5년 일본과의 외교가 재개되자 우리 도예는 일본 차인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 ||||
▷1970년대 이후의 전승도예
1970년대는 한국 전통 도자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룬 시기임과 동시에 몇 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남긴 시기이기도 하다. 전통문화를 계승ㆍ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정책이 수립되고, 관련 학자들의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단절의 위기에 처했던 전통 도예의 중요성과 가치가 새롭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이 일본화 돼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주요 소비자였던 일본인의 취향을 따르다 보니 그릇의 형태나 유악, 색채, 문양 등이 한국 전통 도자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에서 멀어진 것이다.
특히 찻그릇에서 그 변화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생활 도자기는 차인들에 의해 찻그릇으로 각광받았고, 일본상인들은 우리 사기장들에게 이러한 찻그릇을 생산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주문 생산된 찻사발들은 철저하게 일본화된 것들이었다.
정씨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 이루어졌어야 할 이 시기에 상업적 이익을 위해 품질이 조악한 상품과 일본 취향의 도자기가 양산됐다”며 “특히 찻사발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는데, 일본 차인들의 기호에 맞는 찻사발을 만들다 보니 한국 전통 찻사발의 형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일본화 된 찻사발의 특징으로는 틀로 찍은 듯한 크기의 균일성과 기계로 깎은 듯 정교하고 말끔한 뒷마무리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 ||||
▷전통도예와 찻그릇 만들기의 과제
정씨는 우리 도예문화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일본취향을 벗어나는 것과 장작가마와 가스가마의 공존문제, 수입에 의존하는 대신 자체적인 도자기 흙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든다. 또한 자비로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차 단체를 이끄는 이들과의 담합으로 찻사발 가격을 높이려는 일부 도예인들의 행태를 지적한다.
이에 더해 찻그릇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정한 비평이 확립되지 않은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다. 정씨는 “도예비평을 위한 전문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도예작가들이 비평 자체를 싫어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작품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때 비로소 작품성과 작가론이 확립되어 우리 전통도예가 과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
<전시 BOX>
2ㆍ3세대 도예문화 이끌어갈 도예가 14명 한 자리에
불일미술관 9월 7~27일
9월 7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는 정동주씨가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에서 소개한 14명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다기 전시회 ‘한국의 찻그릇 흙에서 불까지’가 열린다.
출품 작가는 김갑순 김대희 김성철 김종훈 김지선 서영기 신현철 여상명 우동진 유태근 이일파 이정화 임만재 홍성선씨. 이들은 해방 이후 전통도예 2세대를 이끌고 있거나 전통도예와 현대도예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3세대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작가들로, 정씨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 찻그릇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자 한다.
전시는 9월 7~13일 찻사발 전, 14~20일 찻잔전, 21~27일 차도구전으로 나눠 각각 개최된다. (02)733-5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