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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곳이요? 내가 좀 볼 일이 많아요. 그래서 오토바이 운전 경력만도 벌써 30년입니다. 오토바이 없으면 볼 일을 다 못 볼 정도로 바빠요.”
떡 방앗간 사장이 떡 만드는 일도 아닌 일로 뭐가 그리 바쁠까? 오토바이를 따라 가보면 금방 그 답을 알 수 있다. 김 씨의 오후 시간은 어김없이 울산시 동구에 소재한 경로당 48곳을 하루에 2-3곳씩 나눠 둘러보고 그 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일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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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이 객지에 정착한 김 씨의 전 재산은 맨 몸뚱이뿐. 경로잔치에 필요한 경비 마련을 위해 연탄 장사, 밤 깎기 등 궂은일을 가리지 않았다. 연탄 얼룩이 묻은 옷을 입고 때론 밤물로 불긋불긋 얼룩진 옷을 입고 다니던 김 씨가 어렵게 번 돈으로 경로잔치를 열었을 때,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한두 번 하다 말겠지’하는 냉소가 전부였다.
“그때는 정말이지 거지처럼 하고 다녔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지요. 악착같이 벌어서 일년 동안 모았다가 하루 잔치하는데 다 썼으니 비웃었지요. 그 때 억울한 얘기 들은 것, 무시당한 것 얘기 다하려면 책 한권으로도 모자라요. 하하하.”
처음 3년간은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없는 형편에 자식들 키우기도 힘든데 남을 돕는 건 가당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행복한 웃음은 김 씨를 놓아주지 않았다. 3년이 지나자 남편 김재우(59) 씨까지 돕겠다고 나섰다. 2박 3일, 혹은 4박 5일의 효도관광을 떠날 때면 직장에 휴가를 내고 따라 나섰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동네 어르신들을 내 부모처럼 모시기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도 김 씨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봉사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석류장과 아산재단상을 받았지만 상금 2천만 원을 고스란히 어려운 이웃의 치료비와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자 오해는 말끔히 벗겨졌다. 봉사 활동 20주년을 맞아 기념품을 돌렸을 때는 김 씨를 찾아와 김 씨의 한결같은 마음에 감복했다며 손을 잡고 우는 사람들이 생겼을 정도.
올해 29년째를 맞이한 김 씨가 연 경로잔치는 40회를 넘었다. 처음 200-300명이던 경로잔치 인원이 이제 1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전국의 명승지는 안 가본 곳 없이 다녀온 효도 관광도 봄, 가을 두 번은 빼놓지 않았다. 효도 관광을 떠나는 날은 자식들 따라 객지에 와서 외롭고 쓸쓸한 일상을 보내던 어르신들에겐 특별한 외출이었다. 어떤 할머니는 여행의 기쁨에 졸도를 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는 할머니를 지켜보며 김 씨는 울음을 삼켰다고 한다.
“제 업이라고 느껴요. 이제 조그마한 일만 생겨도 경로당에서 전화가 와요. 그러면 안 가볼 수가 있나요? 오토바이 타고 달려가야죠.” 어제 밤에도 밤 9시에 떡방앗간 문을 닫고 경로당으로 달려가 1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해결사죠. 경로당 어르신들끼리 싸움이 나도 어머니를 찾아요.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어머니 말은 들으니까요.”
어르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숙업이 돼 버린 김씨와 어르신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깊어갔다.
김 씨에겐 경로당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 만큼이나 변함없는 세월동안 이어오는 일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아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됐던 사찰 법회에 공양물 올리기다. 태어나자마자 심한 병치레로 목숨이 위태롭던 아들을 위해 무작정 찾은 곳이 집 근처의 공덕사. 백일 사진조차 찍어놓을 엄두를 못 낼 정도 였던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 이제 떡 방앗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그 모든 게 부처님의 은덕임을 믿고 있다. 그 인연으로 시작된 공덕사엔 오늘까지도 모든 법회 때마다 떡 공양을 올리고 있으며 방생법회가 열리면 그 법회에 필요한 공양물은 반드시 김 씨 몫이다. 그 뿐 아니다. 통도사, 불국사 등의 선방에도 하안거 동안거 때마다 대중공양을 올리기도 했다.
“전 법명도 없어요. 이름이 없어도 주고 싶으면 주고 내 마음이 부처를 만들고 내 마음이 다 알아서 한다고 믿어요. 내 마음이 깨끗해야지 내가 할 짓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절을 암만 해도 소용이 없잖아요?”
바쁜 시간을 쪼개 108 염주도 돌리고 기도도 게을리 하지 않는 김 씨지만 절에 가서 보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고백했다. 경로당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부처님의 화신이란 믿음으로 부처님을 뵈러 절에 가듯 늘 오토바이를 타고 경로당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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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은 나눠 먹어야 제 맛이라는 옛말이 있다. 나누는 일로 떡의 제맛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는 서부패밀리 떡방앗간 김 옥순 사장의 오토바이가 출동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김 씨는 오늘도 최고의 쌀과 정성으로 빚어 만드는 떡만큼이나 달콤한 사랑을 오토바이에 싣고 경로당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