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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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담 스님의 원정 스님이야기
우리의 일상은 해야 할 일과 하지말아야 할 일로 구분되어 있다. 구분의 분상은 각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형적 형식에 치우친 부분이 많다.

외형적 형식은 어쩌면 아만과 자존을 나타내는 모습일 수도 있다. 비록 내면의 이상을 꽉 채운 이지적 모습일 지라도 외형적 형식인 자존과 아만의 모습이 거칠게 나타날 때에는 이웃과 대중에게 오해나 곡해, 질타를 받게 된다. 심하면 멸시를 당할 수도 있다.
원정 스님에게는 스스로를 내놓지 않는 완벽함이 있다. 모양과 형식이 원정 스님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추구하는 올바름이 그렇다.
그래서 외적인 자존과 지존의 형식을 구애받지 않는다.

스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원정 스님이 결정한 일은 없다고 말한다. 옆에서 이렇게 하면 좋다고 해서 따라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아니다. 바른 길과 빠른 방법을 두고, 돌아만 가려고 하는 사람의 확신에 찬 잘못을 고치는 시간을 준 것이지 일의 성사나 성취를 준 것이 아니다.
잘못하고 난 뒤 스스로의 오만과 자만을 알게 하려는 남다른 배려에서다. 원정 스님에게는 넓은 폭과 깊이, 그리고 카리스마가 있다.

원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해인사 강원 방부를 들이기 위해 후원 소임을 볼 때다. 스님은 종무소 소임을 맡고 나는 총무 시자를 맡았다.
총무 시자로서 종무소를 들락거리는 일이 잦았고 따라서 정이 들었다. 그 때 강원 입방을 했다. 스님은 경반으로, 나는 치문반으로 방부를 들였다.
당시의 선배란 하늘같아서 그림자도 밟지 못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 또한 강원을 졸업하고 나서 중앙승가대 시험을 보고 입학식을 하는데서 원정 스님을 만났다. 선배 뿐 아니라 후배들도 여럿 있었다.
그 때의 감회란 말로써 이루 다할 수 없었지만 당시 승가대생 대부분이 법랍 10년이 넘었다. 10. 27 법난 이후라 모두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감추고 있는 듯 했다. 모두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 원정 스님은 모두가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각 방의 빨래를 기다리는 양말들과 더러워진 고무신을 걷어다 깨끗이 삶고 닦아 가지런히 해놓고, 방사를 깨끗이 정리하고난 후에야 지방으로 내려가곤 했다.

원정 스님은 승가대를 졸업하고는 성주사 주지를 맡았다. 당시의 성주사는 낡고 후미진 작은 절에 불과했다. 그런 절을 맡아서는 신도를 위한 불교교양대학과 출가에서 열반까지의 대 법회를 열었다.
설법전과 요사채 불사를 위해서 시간만 나면 전국의 문화재급 건축물을 일일이 돌아보고 참고로 했다. 유서깊은 기도터와 옛 가람터,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 강진 무위사 법당은 물론 현대적으로 불사를 잘한 크고 작은 절과 심지어 유림의 서원까지 돌아보았다.
그도 충분치 않았는지, 당시 최고라고 자타가 공인한 문화재관리위원의 자문을 받으며 불사를 했다. 법당의 기둥과 문설주 문과 꽃살 문양과 포, 형식과 방법을 모으는데만 3년이 걸렸다.
사람들이 집 한 채 짓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정도다. 옆에서 볼 때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원력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듯 했다.

그렇게 정성으로 지은 설법전과 요사채가 불사 회향을 앞두고 불이 나 모두 타버렸다.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모아놓은 귀중한 도서들도 다 탔다. 경찰에서는 전기누전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이교도가 시기 질투로 벌인 짓이라 했다.
원정 스님은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무위(無爲)의 위를 이야기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이 아닌 만들어짐이 있는 것, 즉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닌 흐름과 호흡이 있는 자연스러움이 함께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육신과 정신이 지치고 힘들면 어느 자리에서든 쉬고자 한다. 나무그늘이든 돌위든 좌복에서든, 길 가에서든.... 그런 뒤 다시 육신과 정신을 추스려 일어선다.
그러나 원정 스님은 아니다. 힘들고 지치면 육신은 나무그늘이든 돌 위든 좌복 위든 길가든 내려놓고 쉬지만, 정신만은 옷자락을 휘적거리면 청 대나무숲 바람소리 내고 계속해 걷고 있는다.
옷자락 휘적거리는 청 대나무 바람소리에 일어나 보면 가있는 거리의 차이가 느껴진다. 벌써 저만큼 가 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충분함으로 함께하고자 한다.
강태공이 곧은 낚시로 시간 낚기를 기다린 것이라면, 원정 스님은 공간의 울타리로 시간의 초조함을 넉넉하게 하고 불완전한 갈
등을 온전한 완성으로 감싼다.

스님은 현재 창원 성주사 주지로 범어사 교구 종회의원을 맡고 있다. 15년 전 하동에 폐교를 매입해 한가람청소년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선재청소년 수련장도 만들었다.

룸비니 유치원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처럼 스님은 미래 불교의 희망인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관심이 많다.
2005-08-27 오전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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