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서 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은 그 성품이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과 같다고 해 불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오랜 세월 사찰에서는 연을 심어 가꿔 왔다. 그러나 최근 10여년 사이 연꽃은 본래 있어야 할 연밭이 아닌 찻상 위에서 더 흔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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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할 만큼 뛰어난 약리작용을 가지고 있다. 흔히 연근이라 불리는 뿌리줄기는 식용으로, 잎과 꽃은 차로, 연밥은 약용이나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이 같은 연의 상품성을 인식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규모 연밭을 조성하고 축제를 개최하는 등 연꽃을 관광 상품화하기에 앞장서고 있다.
사찰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7~8월이면 연꽃축제를 개최하는 사찰이 전국적으로 10여 곳이 넘는다. 무안군 백련대축제나 청운사 하소백련축제, 인취사 백련시사회, 봉선사 연꽃축제, 봉원사 연꽃축제 등은 매년 수백, 수천 명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러나 연꽃축제가 번성할수록 정작 연밭에서는 연꽃을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연꽃차를 만들기 위해 채 피지도 않은 연꽃을 줄기째 자르는 것은 물론, 꽃이 채 피기 전의 연꽃을 대량으로 채취해 꽃잎에 차 주머니를 넣고 실로 동여맨 뒤 냉동실에 넣어 두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 연꽃은 생명의 근원이자 불교의 신앙체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화엄경탐현기>에서 향기(香)와 깨끗함(潔), 맑음(淸) 정갈함(淨)을 상징한다고 했던 연꽃이 언제부터인가 ‘웰빙’과 ‘건강’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사시사철 즐기는 대용차로 변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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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연밭으로 가서 막 꽃잎을 접으려는 꽃송이를 살며시 열고 조심스럽게 비단주머니에 싼 차를 화심(花心)에 넣어둔다. 이튿날 아침 꽃잎이 반쯤 피었을 때, 꽃잎이 다치지 않게 살며시 차를 꺼내 샘물을 끓여 차 마시기를 좋아했다. 그 차는 향기가 유난히 좋았다.’
명나라 고원경이 쓴 <운림유사>나 명나라 도융의 <고반여사>에 말하는 연꽃차 만드는 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연꽃차의 모습은 오늘날처럼 연꽃을 직접 따서 차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연꽃 속에 찻잎을 넣어 향이 배게 한 후 그 차를 불에 쬐어 말려 우려 마시는 ‘연향차(蓮香茶)’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연차 문화에 대해 혜우 전통차제다교육원의 혜우 스님은 “연꽃을 줄기째 꺾어 차로 만들어 나누어 마시는 것이 분위기 있는 찻자리인 양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연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래 화차(花茶)는 계절에 맞는 차의 향을 가미해 즐기는 대용차의 일종이므로, 연꽃이 피는 기간이나 종교적 행사 같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여법한 법도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업적인 목적으로 연을 대량 재배하거나 또 이를 즐기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상생계를 지키는 불가에서조차 단지 향을 즐기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연꽃을 꺾는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