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달라이 라마야?”
많은 사람들이 책 제목을 보고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달라이 라마는 평화나 자비, 관용, 명상, 깨달음 등의 단어로 포장된 채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으로 검색되는 국내 번역본만 50여 종이 넘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상품성’이 뛰어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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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질 반 그라스도르프는 1993년부터 10여 년간의 방대한 자료조사와 주변인물과의 인터뷰, 대담 등을 통해 한 권의 평전을 탄생시켰다. 기존의 달라이 라마 관련 서적들이 그의 법문이나 수행법만을 다루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삶을 되짚어간 전기가 아닌, 달라이 라마를 통해서 본 티베트의 정치ㆍ종교적 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가치를 가진다.
티베트인들의 영적ㆍ정치적 지도자를 뜻하는 ‘달라이 라마’는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에 의해 세계 평화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조국 티베트가 권력의 폭압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3대 달라이 라마가 통치하던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티베트는 자신들만의 문화와 역사를 가진 독립 국가였다. 자연히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도 티베트인들에게서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1933년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열반 후, 티베트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인과 티베트를 자국의 영토로 묶어 두려는 중국인 사이에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한 기운이 팽배했다. 그 어떤 사람의 희생도 원하지 않았던 텐진 갸초는 피난길에 올랐고, 인도 다람살라에서의 고달픈 망명정부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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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13대 달라이 라마의 열반에서 시작해 텐진 갸초의 탄생과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선정돼 교육을 받는 과정, 수많은 수행자들을 이끌고 인도로 망명하게 되기까지의 70여년을 연대기적으로 엮었다. 여기에 주변국과의 갈등과 티베트인들의 생활상, 신탁과 환생 등 티베트 불교의 특징도 생생하게 그려 놓았다.
‘정치적 미스터리와 영적 카리스마의 비밀’이라는 책의 부제에서 보듯 신비의 베일이 벗겨진, 고뇌하는 정치인이자 수행자로서의 달라이 라마의 모습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달라이 라마 평전>(질 반 그라스도르프 지음, 백선희 옮김, 아침이슬,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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