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여만부에 이르는 불교서적 출간, 50여 곳의 군 법당 건립, 불교방송 설립 지원, 최초의 불교 교양대학 설립, 대한불교진흥원 설립…. 우리 불교사에 남겨진 이 같은 발자국들은 하나같이 동국제강 그룹 창업주인 故 장경호 회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장 회장 입적 30주기를 맞아 그의 일생과 수행 과정을 담은 평전 <이 땅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가 출간됐다. 평생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에 매진하고, 이 땅에 불국토(佛國土)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한국 재가불교 운동의 사표로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
27살에 처음으로 통도사에서 안거를 난 후 “상업에 종사해 크게 돈을 벌어 불교에 바치겠다”고 맹세한 그는 1929년 첫 사업체인 대궁양행을 설립한다. 이후 점심 한 끼 사 먹지 않고,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 쓴 장 회장의 노력한 덕분에 이 사업체는 오늘의 동국제강으로 거듭났다.
그는 사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재가 수행자로서도 뒤지지 않는 구도열을 내뿜었다. 만공 한암 스님을 찾아 깨달음의 길을 구했고, 평생 정월 초하루 불공을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나이 육십이 되면 사업에서 물러나 수행에 전념하겠다’던 결심을 잊지 않고 62살이 되던 1960년부터 10여 년간 부산 금정산 무위암에서 안거를 지낸 일은 깨달음에 대한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대중 포교에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문서포교를 위해 불서보급사를 설립하고 불교서적을 펴냈으며,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대원정사를 건립해 도심포교의 거점으로 삼고 불교계 최초의 불교 전문교양대학과 시민선방을 개원했다.
갑작스런 췌장암 선고에도 그는 목숨을 부지할 생각보다 포교를 고민했다. 그가 ‘불교 중흥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과 함께 남긴 사재 30억원은 대한불교진흥원 건립의 초석이 돼 포교 현장에 두루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철학으로 동국제강을 세계적인 기업체로 발돋움하게 하고, 대중포교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장 회장. 평전을 통해 장 회장의 부처님 법을 따르겠다는 굳은 신념과 초심을 잃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 <이 땅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대원장경호거사평전간행위원회 엮음, 대원사,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