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건설사 공사 수주 담당으로 일하면서 부처님을 다시 만나게 됐고, 사경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됐지만, 여전히 나는 불교 초심자였다. 그리고 불교를 좀 더 알고 싶다는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즈음 회사 근처에 있는 영화사라는 절을 알게 됐다. 4년 전부터 다니게 된 영화사는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그윽한 산사의 풍취를 간직한 고찰이라 내 마음의 안식처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회사와 가까워 더욱 자주 사찰을 찾았고 기도에 매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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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경을 하고 불교 경전을 조금씩 읽어보긴 했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보니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진리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많았고 그 종점도 각기 달라보였다.
참선과 위빠사나, 염불, 사경 등 수많은 수행법과 또 셀 수도 없이 많은 불교 경전이 말하는 깨달음이나 진리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라는 큰 줄기를 보고 싶은 마음에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한 후 “이왕 공부하기로 한 것, 제대로 한 번 해 보자”는 생각에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까지 예불하고, 염불하고 그리고 경전을 서사, 수지, 독송한 것은 불교의 입문 절차이었고, 지금부터는 부처님 법을 바로 알고 배우라는 기회로 알고 육순이 넘는 나이도 잊고 항상 강의실의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었는지 얼떨결에 학생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사실 절에 다니면서도 신도회나 거사회 등의 모임에 참석을 하지 않아 사찰이나 불교대학의 운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학생회장이란 중책을 맡기가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학생회장을 맡게 됐고, 앞으로도 주어진 소임을 열심히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내가 그동안 절에 가서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불교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러나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스님과 전문 강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머리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교리를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저명한 교수님과 덕망 높은 스님으로부터 사찰예절을 배우고 부처님의 생애, 불교개론, 근본불교, 선학개론, 중국 및 한국불교사, 업 사상 등의 기초 학습과정을 수강하게 됐다. 지도교수와 스님들은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수준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어려운 말을 풀어서 알기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심도 있게 가르쳐 주셨다.
특히 불교근본교리를 지도하시는 동국대 조용길 교수님의 강의는 경쾌한 유머와 다양한 비유법으로 진행된 재미있는 수업이었고, 업 사상에 대한 설명은 초심자인 내가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가슴을 저미는 감동을 받기도 했다. 또 승가대학원장이신 종범 스님을 특별 초빙하여 ‘무상 법문’을 직접 들은 것도 큰 보람이었다.
물론 불교대학에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일부분일지라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 불교대학의 목적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공부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처음엔 경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말만 담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경의 구성과 내용,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알게 되면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경전을 공부할 수 있었다.
지난 학기말에 김제 금산사에서 단체 템플 스테이를 했다. 생애 처음 하는 경험이었고 빈틈없이 꽉 짜여진 일정표대로 행사가 이어졌으며 특히 발우 공양과 참선시간 그리고 다도시간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발우 공양은 본교 홍재 스님이 엄한 법도로 지도하셨고 그 분위기가 사뭇 엄숙하고 진지하였다. 또 공양의 절차도 질서도 너무나 엄격하여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던 체험이었고 옛날 스님들의 엄격한 질서와 생활의 일면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나에게 좌선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신 대명 스님의 친절한 가르침과 다도시간에 우진 스님이 “다 도(道)다. 일상생활이 도고, 또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는 것이 도다”라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많은 프로그램들 보다 더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불교대학 동기들의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든 솔선수범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동기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참된 봉사가 무엇인지 알게 됐고, 나 역시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2박 3일간의 템플 스테이를 마치고 난 후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죽을 때까지 부처님 법을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으로 공부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여 안개 속을 헤매는 듯 했고, 사경을 하면서 글씨에 마음을 두고 독경을 하면서 외우는데 더 마음이 있지 아니하였는가 하는 반성을 하면서 “마음이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다”는 조사 말씀을 다시 새겨 보기 위해 경허 스님의 <선문촬요>를 다시 펼쳐본다.
간명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자세히 마음보는 절차가 있건만, 무명에 덮이고 아집을 벗어나지 못함을 꾸짖는 듯한 한 소절 한 소절을 마음에 담아 본다.
한 가지를 더 소개하면 영화사 거사회 회원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서 경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화엄경>을 배우고 있다. 이전에 <화엄경>을 일독한 바 있었지만 내용이 너무 방대해 글자만 읽었을 뿐이었다. 이번 학습을 통하여 장엄한 화엄의 세계를 좀 더 깊이 볼 수 있었기에 희열이 적지 않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부처님 공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집사람이 약 1년 전부터 초발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내가 절에 나가기 시작했고 <화엄경>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의 신심은 날로 높아져서 백일 천도재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니는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아내가 절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집안에서의 대화도 한결 부드러워 졌을 뿐 아니라 서로가 절에서 배운 것을 묻고 답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도 함께 의논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의 도움이자 부처님 공덕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내가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죽을 때 까지 우리 부부가 함께 부처님 법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한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