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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족들이 가정에 거주하는 한 ‘청소의 완전 종료’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청소를 깨끗이 하고 아무리 주의를 해도 다음 날부터 거실과 방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매일 청소를 하고 가끔 대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자연과학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모든 사물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경직되고 혼돈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을 다시 올바른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면 에너지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과 사회와 조직에 가끔 대청소를 하듯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경직되고 혼돈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최근 삼성, 두산 등 주요 재벌기업들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거액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상황을 보면 ‘엔트로피의 법칙’이 떠오른다.
삼성은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그룹이다.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된 데는 선진국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반도체 등 유망사업을 발굴하는 데 열정을 불태운 고 이병철 회장의 집념과,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함께 신경영을 선포한 이건희 회장의 변화경영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인 1995년 말부터 구조조정 작업을 해온 두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구조조정 성공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OB맥주의 지분 매각, 본사사옥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 전체가 회생할 수 있었다. ‘성역을 깨라’, ‘나에게 걸레는 남에게도 걸레다’라며 구조조정의 새로운 개념을 심어 주던 박용성 회장의 강연은 기업인은 물론 IMF의 고통을 감내하던 일반인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다.
최근 재벌기업의 내부비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상황은 그 대상이 삼성, 두산과 같은 모범적이라고 알려진 기업이 직접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이와 같은 문제가 기업들에게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원인은 일차적으로 ‘경영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경영철학의 부재는 도덕불감증이나 단기적인 기업가치에 매달리는 경영으로 이어진다. 10년 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향후 100년을 준비하자”며 비장한 장기계획을 발표한 기업이 두산이 맞는지, 불법 정치자금 제공은 삼성이 말하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할 바로 그 대상’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섣불리 시장경제의 원리를 제약하는 재벌개혁과 규제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반기업정서 1위’의 오명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기업비난의 수준에 머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냄비가열이나 푸닥거리와 같은 이벤트식 해법으로는 이 문제를 도저히 풀 수 없다.
이 문제의 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가까운 데서부터 찾고 긴 안목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각자가 초심을 되짚어 보고 모두가 스스로 초심으로 되돌아가는 것, 자신과 기업과 사회와의 상생적 관계를 이해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상호의무를 다하는 것, 더 나아가 투명한 사회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삼성과 두산 같은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개혁은 삼성과 두산이 스스로 이룩해야 하며,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이룩해야 한다. 개혁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면 누구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왜곡된 사회적 가치관을 바로잡는 것은 모두가 초심을 되찾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기업들의 혼돈상황이 주는 교훈은 지금이 바로 지혜경영 제1계인 초심경영의 지혜가 절실한 때임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