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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다는 독자부터 폐사지 보존 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물어오는 독자에 이르기까지, 폐사지보존 법안이 상정되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반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폐사지는 불교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왔다. 전국 2천~3천여 개의 폐사지 가운데 1960년대 이후 100여 곳만이 발굴됐으며, 사적 또는 시·도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는 곳은 100여 곳에 불과한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폐사지에 대한 무관심은 폐사지에 관한 변변한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았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전국에 폐사지가 몇 개나 되고,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파악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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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최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던 산청 단속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두 기의 석탑과 3.56m 크기의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단속사지동3층석탑 등 두 기의 석탑은 보물 제72·73호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석탑과 더불어 사찰의 중심을 이뤘을 금당 자리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보물 463호 진공대사탑비의 귀부와 이수, 그리고 보물 464호인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원주 흥법사지(문화재자료45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초석이 여기 저기 뒹굴고, 절터 한편에는 고추밭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폐사지도 이 같은 상황이니, 대다수 지정되지 않은 폐사지는 말할 것도 없다.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 중인 인도확장공사는 폐사지에 대한 냉대의 극치를 보여준다.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승인을 받아 공사가 진행 중인데, 보물인 당간지주 옆의 LPG 가스통과 산소용접용 가스통이 위태롭다. 게다가 당간지주 보호난간 옆에서 지반침하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폐사지 보존은커녕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 안전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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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화재적 가치가 적은 곳이면 방치되고, 유물이 좀 있고 볼 것이 있는 곳은 관광자원으로 개발되는 것이 폐사지가 오늘에 처한 현실이다. 폐사지의 가치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불교계가 나서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폐사지에 대한 무관심과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폐사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폐사지에 대한 불자들의 관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찰문화연구원 신대현 연구위원은 “폐사지란 인연이 다해 사찰의 기능이 멎었을 뿐 여전히 사찰 못지않은 불교유적”이라고 지적하며 “폐허가 된 절터에서 불법과 구도정신을 배울 수 있는 만큼 성지순례 코스로 포함시켜 폐사지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