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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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총림 선암사 하안거 해제법문 발표
지허 스님(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 선원장)

태고총림 선암사 을유년 하안거 해제 법문



지허 스님.
지난 결제 때 올 여름 안거는 일생에 없었다는 결심으로 만사를 다 제쳐두고 조사관을 단연코 투득하고야 말겠다했는데 어느새 해제가 되었습니다.

성과의 심천은 내버려두고 무더운 여름에 선방에 앉아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 해제법회가 끝나는 대로 걸망을 메고 일주문을 나서 행각하는 납자도 있고 선원에 남아 정진하는 납자도 있을 것입니다 마는 그래도 그간 지냈던 선방이나 한번 빗자루로 쓸어내고 깨끗이 청소하고 가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이겠습니다.

오래 전 그러니까 육조스님의 弟子인 영가대사라는 분이 선방에 버려둔 쓰레기를 아직 치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 쓰레기나 한번 치우는 것이 어떠한 지요?
그 쓰레기는 이러합니다.

요요견무일물(了了見無一物)하니
역무인역무불(亦無人亦無佛)이라.
대천세계해중구(大千世界海中구)요
일체성현여전불(一切聖賢如電拂)이로다.

잘 보고 잘 보니 한 물건도 없고
사람도 없고 또한 부처도 없네.
대천세계는 바다 속 거품이요
모든 성현은 번갯불이라네.

자세히 보고 또 자세히 본 뒤 한 물건도 없다니 그대로 두고,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다니 그것도 그대로 두고, 삼천 대천 세계가 바다 속 거품이 라하고 모든 성현이 찰나에 번쩍하고 사라진 번갯불이라 했습니다.
여기 바다 속 거품과 번갯불이 치워야할 쓰레기입니다.
누가 이를 야무지게 비질해서 싹 쓸어버리고 본래 청정한 도량으로 되돌려 놔야겠습니다.
누가 나와서 청소할 사람 없습니까?

병납(病衲) 지허는 이렇게 쓸겠습니다.

곤어지박(困魚止箔)이로다.
통발에 든 고기가 나오지 못했구나.

운작천봉설(雲作千峰雪_이요
천개일단초(天開一段초)라.
처처통귀로(處處通歸路)하니
두두시고향(頭頭是故鄕)이로다.

구름은 천 봉우리에 눈 온 것 같고
하늘은 한 폭의 비단을 펼친 것 같네.
곳곳마다 돌아갈 길로 통하니
모든 것이 다 고향이로다.

이로써 금년 하안거 법문은 마치고
우리 해동 초조이신 태고 조사께서는 어떻게 해제를 하고 해제 후에 어떻게 행각을 했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태고 조사는 지금의 북한산 태고암에서 오년간 결제에 들었다가 해제하셨습니다.
출가한지 이십오년만이요 만법귀일의 화두든지 십구년만입니다.
그간 조주 무에 걸리기도 하고 암두밀계에 매이기도 했으나 철저하게 참구하여 타파했고 그런 뒤에 활연대오하여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이 되어서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발길 닫는 대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 행각에 나섰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만행오신 무극 화상을 만나 그로부터 “지금 중국의 남방에는 임제정맥의 법통이 아직 끊어지지 않고 전해오고 있으니 가서 인가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종조께서는 바로 중국으로가서 연京을 거쳐 대선지식 축원성 선사가 종풍을 드날린다는 남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축원성 선사는 이미 열반에 드셨고 그 제자들이 축원성 선사의 관문인 삼전어(三轉語)를 태고종조앞에 내 놓고 하어를 청하였습니다.
삼전어의 형식은 예부터 선지식들이 후학을 접할 때 흔히 쓰는 공통된 형식입니다.
이를테면 임제 화상에게는 삼구의 관문이 있었고 파능 선사에게도 삼구가 있어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 종문에 들어 법거래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축원성 선사의 삼전어는 이러합니다.

제일관문은
출가학도(出家學道) 지도견성(只圖見性)인데 차도(且道) 성재십마처(性在什마處)오
즉,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다만 견성하기 위함인데 그 성품은 어디에 있는지 말하여 보라’이고
제이관문은
삼천리외정효와(三千里外定효訛)인데 대면인심불상식(對面因甚不相識)이라
‘삼천리 밖에서도 잘못을 가려내는데 어찌 얼굴을 대하고는 알지 못하는고’이며
제삼관문은
전양수(展兩手) 운(云) 차시제이구(此是第二句)인데 환아제일구래(還我第一句來)하라
‘두 손을 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제 이구인데 제 일구를 내게 가져오라’ 입니다.
이를 보자 우리 태고 조사는 이 삼전어를 바로 한 게송으로 答하였습니다.

좌단고불로(坐斷古佛路)러니
대개사자후(大開獅子吼)로다
환타노남소(還他老南巢)하니
수각구불노(手脚俱不露)네

앉아서 부처 길을 끊고
사자후를 크게 부르짖는다기에
멀리 오랜 남소 땅을 찾아 왔더니
손과 발을 드러내 놓지 않네.

불노야명여일(不露也明如日)하니
불음야흑사칠(不隱也黑似漆)이라.
아래적서귀(我來適西歸)하니
여독고여밀(餘毒苦如蜜)이로다.

드러내지 않아도 밝기가 태양 같고
숨기지 않아도 검기가 칠통같은데
내가 오니 마침 서쪽으로 갔으니
남아있는 독기가 꿀처럼 쓰구나.

태고 조사의 이와 같은 게송을 즉석에서 들은 축원성 선사의 제자들은 축원성 선사가 생존 시에도 이렇게 명료하고 통쾌한 삼전어의 답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탄복하면서 “우리중국에 참선하는 납자가 수천 명이지만 이 삼관문을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해동의 장노께서 처음으로 축원성 선사의 관문을 한번에 통과하셨습니다.” 하면서 “장노께서 이곳 방장으로 주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하였지만 우리 종조께서는 이를 사양하고 호주 하무산 천호암으로 임제 십팔대 적손인 석옥 청공 선사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나셨다합니다.

하안거 해제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을 사는 해동 초조 태고 화상 후손 여러분!
진정한 해제는 이와 같고 행각이 이와 같으며 불조의 정법이 이러합니다.
할아버지를 닮지 않는 후손이 없다합니다.
더욱이 태고 화상을 종조로 모신 태고종의 종도들은 태고 화상의 종지와 종풍이 이와 같은 것을 항상 뼛속에 아로새겨 어느 때 어디서라도 잊지 말고 생사를 해탈하기 위해서라도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야겠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뛰어 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종조이신 태고 조사를 뛰어 넘어야 진정한 후손입니다.

고간한천수(古澗寒泉水)를
일구음즉토(一口飮卽吐)라
각유파파상(却流波波上)하니
조주미목로(趙州眉目露)로다

옛 도랑 찬 샘물을
한 입으로 마시고 토했네.
흘러가는 것을 막은 물결 위에서
조주스님의 눈썹과 눈이 드러났네.

강유신 기자 | shanmok@buddhapia.com
2005-08-19 오후 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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