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조선시대 16
조선 중기 전란을 치르면서 민중들이 지배계층에 대한 실망감으로 애국적인 면에서나 신분의 면에서 새로운 각성을 일으켰다. 따라서 신분 상승에서 욕망이 싹트고 때마침 실학정신이 풍미하면서 양반 계층에서도 이런 사상들이 일어났다. 유능한 인재라면 신분에 얽매이지 말고 국가를 위해 등용해야 하며 불승들에 대한 관념적 제도적 차별도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의 촉발제는 흉년과 기근이 계속되므로 백성들은 물론 일반 사서인(士庶人)
들도 곤궁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데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익, 김만중 형제 같은 선비 차인들이 나오고 상월이나 함월 등의 선사 차인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윤두서 같은 명인이 나와 활동하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화(茶畵)를 남겼다.
중국은 차 무역에 힘써서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었다. 이는 차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도자기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자공예에도 힘썼다. 이때 일본은 안정된 다도가 문적으로 기록으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① 이익의 <성호사설>에 말차 점다하는 풍속이 나온다. 야다시(夜茶時)의 뜻이 퇴색하는 것을 개탄하고, ‘다식(茶食)’조에 찻솔 얘기도 있다.
② <대동시선>에 이단하(李端夏)의 ‘음다(飮茶)’라는 시가 나온다.
③ 상월새봉(1687~1767): 대둔사 9대 종사로 차를 즐겨 다시를 남겼다.
④ 김만기(서석)와 김만중(서포) 형제: 형제 차인으로 서포는 꿈속에 온 신선의 이야기가 나오는 다시가 있고 서포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뿐 아니라 다시도 남겼다.
⑤ 함월해월(1691~1770): 환성지안의 의발을 받았고 차와 선을 함께 한 스님이다. 다선실(茶禪室)과 다실을 읊은 시가 전한다.
⑥ 네덜란드인 니코라스 비트센이 쓴 책으로 ‘조선에 차의 생산량이 많다’고 했다.
⑦ 윤두서: 문인이자 화가로 조선의 삼제(三齊)로 일컬어진다. 다화도 많이 남겼다.
⑧ 양관대제학을 지냈으며 ‘연다(烟茶)’라는 시에 차를 곡물과 교환하는 이야기를 썼다.
⑨ 오건: 청대 사람으로 <다사(茶舍)> <계화점다(桂花點茶)> <장개다법(藏岕茶法)> 등의 저서를 남겼다.
⑩ 장영이 찬술한 책으로 ‘팔지명(八之茗)’에 다사(茶事)에 관해 서술했다.
⑪ 아세단(阿世但)이 지은 것으로 지역마다의 다법을 소개했다. ‘다과(茶課)’ ‘세액(歲額)’ 등 다사가 적혀 있다.
⑫ 차의 수출에 따르는 것이 다기(茶器) 수출이고, 이는 막대한 이득이 수반되기 때문에 청의 강희제 때는 의흥을 중심으로 도자공예가 발전했다.
⑬ 조정동(1699~1785): 청대 사람으로 차를 무척 즐겨 스님으로부터 차씨를 말(斗)이 넘게 받아 정월 개울가에 심고 <종다자가(鍾茶子歌)>라는 부(賦)를 썼다.
⑭ 1690년 장기(長埼)에 있던 화란상관의 의사로 온 독일인 엥겔버트 캠퍼가 쓴 글이다. 길거리에서 차를 다려 파는 광경을 묘사했다.
⑮ 인견필대(人見必大)가 펴낸 것으로 고을에서 가루차 생산은 없고 우치(宇治)의 차가 제일 좋다고 했다.
<한국>
1680 이익(李瀷)의 출생 ①
@ <대동시선(大東詩選)> ②
1686 전라도 흉작 극심
1687 상월새봉(霜月璽葑) ③
@ 김만중 형제의 활동 ④
1691 함월(涵月)대사 출생 ⑤
1692 <조선국기(朝鮮國記)> ⑥
1695 규장각(奎章閣) 설립
1697 장길산의 농민난
@ 윤두서(尹斗緖)의 활동 ⑦
1698 남유용(南有容)의 출생 ⑧
장흥에서 민란
<중국>
@ 오건(吳騫) ⑨
@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 ⑩
1689 영국과 직접 차 무역
1690 미국 보스톤에 차 판매
<청회전(淸會典)> ⑪
@ 도자공예의 발전 ⑫
@ 왕사정(王士禎)의 활동
1699 조정동(曹廷棟)의 출생 ⑬
<일본>
1690 <강호참부 여행일기(江戶參府 旅行日記)> ⑭
1694 <다도전서(茶道全書)> 간행
1695 <본조식감(本朝食鑑)> 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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