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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인생 60년, 작사가 반야월씨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머문 사람은 곧 그곳의 ‘역사’가 된다. 가요계 최고령 원로 작사가인 반야월(90)씨. 그는 서울 종로구 인현동 ‘스카라 계곡’의 살아 있는 역사다.

‘스카라 계곡’은 지금의 충무로 스카라 극장 건너편 인현동 일대를 일컫는 말로, 이곳이 복개되기 전 비가 오면 남산에서 흘러온 물이 범람해 물바다를 이루곤 하는 모습을 보고 반씨가 지은 별칭이다.

지금까지 2500여 곡을 발표한 가요계 최고령 작사가 반야월(90)씨는 죽는 그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박재완 기자
60년대만 해도 이곳에는 내로라하는 레코드회사와 녹음실, 음악학원 등이 밀집해 있었고, 이미자 신카나리아 쟈니리 등의 가수들이 배출된 한국대중가요의 요람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반씨는 2,500여 곡의 가요를 만들어내며 우리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8월 9일, ‘스카라 계곡’ 한켠에 자리 잡은 한국가요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반씨는 여전히 가요사를 한 줄씩 써 나가는 ‘현역’의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90세 생일을 맞아 67년간의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1,000여 페이지 분량의 회고록과 함께 최신작 ‘스카라 계곡’을 발표했다. 출간 기념회와 언론 인터뷰 등으로 다소 지친 모습이었지만, 기자를 맞는 목소리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화통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박장대소해야 해. ‘하하하’ 정도가 아니라 ‘우하하!’ 하고 웃어야 해.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거든.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늘 즐겁게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난 무조건 건강해야 돼’라고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야. 욕심은 마음을 병들게 해요. 그래서 난 보약을 먹거나 헬스클럽에 가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저 부지런히 일하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저녁 마다 꼭 신문 4~5개를 훑어보고 새벽 1시에야 잠들어요. 사무실에도 거의 매일 나오고.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그를 수식하는 말 앞에는 항상 ‘가장’이라는 말이 붙는다. 우리 가요사에서 가장 많은 노랫말을 지은 사람,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사람, 가장 많은 대중음악 단체의 산파역을 한 사람, 가장 많은 노래비가 세워진 사람….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많은 수식어를 마다하고 그저 ‘좋은 작사가’로 남길 바란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노래가 사람들의 허전하고 아픈 가슴을 달래줬지요. 노래 하나로 온 국민이 같이 웃고 같이 울었지. 그런데 요즘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질 않아. 가사도 문법에 안 맞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기승전결은커녕 줄거리도 없거든. ‘보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에 담는’ 노래를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해.”

그리곤 그 자리에서 ‘불효자는 웁니다’와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같은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보였다.

“아직도 난 내가 발표한 곡, 가사 다 외워. 특별히 기억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절절한 그 심정을 가사로 옮겼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 거야. 무슨 일을 하던 거기에 몰입해야 돼. 그저 만들어서 가사를 쓰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써야 해. 그게 진짜야.”

실제로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길에 올랐다가 둘째 딸 수라를 영양실조로 잃고, 화약 연기 자욱한 미아리 고개에 묻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을 ‘단장의 미아리 고개’란 노래에 담았다. 삶의 애환이 절절히 담긴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반씨는 수많은 히트곡 만큼이나 많은 예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처음 가수로 데뷔했을 때는 ‘진방남’이란 예명을 썼고 이후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등의 이름으로 곡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도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이 반야월이다.

“반야월(半夜月)은 한자 그대로 반달이란 뜻이야. 꽉 찬 보름달은 곧 기울어 일그러지지만 반달은 차츰차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잖아. 그리고 달은 해에 비해서 어머니 같고 포근하고 온화하잖아. 그렇게 살고 싶어서 반야월이라고 예명을 지었어.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달과 같은 포근함으로 사람들의 애환을 쓰다듬고 보듬어 주고 싶다는 그는 우리 가요사에 길이 남은 주옥같은 명곡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그 곡들에는 대부분 중생의 아픔을 감싸 안고자 하는 보살의 마음이 담겨 있다.

‘중생의 지은 죄가 너무나 무거우서 부처님 무릎 앞에 합장을 하오’(‘약수암의 밤’ 1954년 발표)
‘죄 많은 이 아들을 자나깨나 기다리는 어머니 오지랖에 눈물인들 마르오리’ (‘인생은 나그네’ 1957년 발표)

“예전에 사주를 한 번 봤는데, 절에 들어가서 공부하면 고승이 될 팔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 그래서 그랬는지 얼마 후에는 해인사 약수암에 머물며 노래를 만들기도 했어. 부처님 앞에 서면 마음이 평온해져. 자연히 머리가 숙여지고 합장하고 절을 하게 돼. 하지만 난 부처님이 따로 어디 계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종교는 내 마음 속에 있고 내 마음만 바로 가지면 부처고 예수인데 유난스레 표를 내고 종교 활동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내 신앙은 마음속에 있어요. 그러니 내 작품 속에도 나타나지.”

최근 앓고 있는 신경통과 약간 어두워진 귀로 불편할 법도 하건만, 반씨는 직접 기자와 함께 스카라 극장까지 걸어가며 ‘스카라 계곡’의 곳곳에 서린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울 중구 인현동은 가요인들의 요람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 스카라 계곡이란 별칭을 붙여 준 반야월씨가 스카라 극장 앞에 섰다. 사진=박재완 기자
“여기가 바로 내 제2의 고향이자 가요인들에게는 어머니 품 같은 거리예요. 많은 가수와 노래가 이 거리에서 생겨났다 사라졌지. 하지만 난 그들이 남긴 노래가 흘러가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마음속에 면면히 남아 있는, ‘흘러온 노래’들이지.”

스카라 극장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받쳐 든 기자에게 반씨는 ‘우중의 여인’이란 노래를 불러준다. 노래를 부를 때면 나이도, 건강도, 번뇌도 모두 잊게 된다는 반씨.

“예술가는 죽음과 함께 은퇴하는 거예요. 나이 들었다고 ‘퇴물’ 취급하면 안돼. 괴테는 80이 넘어서도 작품활동을 했고 베토벤은 귀가 먹어도 곡을 썼잖아. 나도 죽는 그날까지 노래를 만들 거야. 그 노래를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어.”

<반야월씨는?> 1916년 경남 마산 출생. 본명 박창오. 37년 태평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 신인가수 선발 가요 콩쿠르에 입상한 후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해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남대문악극단을 조직해 ‘산홍아 너만 가고’ ‘마도로스 박’ 등의 악극을 제작했고, 38년 서울중앙방송국에 방송극 ‘허생전’으로 입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반야월’이란 예명으로 ‘산장의 여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 등 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2,500여 곡의 가요를 작사했다.

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74년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등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67년 공보부장관 감사상, 91년 대한민국 국민문화헌장을 서훈했다. 그의 고향인 마산에서는 내년 ‘반야월 가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5-08-18 오전 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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