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법이 무너져 곳곳에서 믿기지 않는 사건 사고가 터져 나오는 이 시대. 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계율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천을 통해 그 해법을 구해보는 법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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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은 교통법규와 같은 것”
“사회에서 법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딱딱하고 어렵고 엄한 줄 알고 있습니다. 또, 불교의 계율도 율사스님들만이 지켜나가는 그런 어려운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계율은 교통법규가 있어서 차들이 마음대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10회에 걸쳐 열리게 될 계율수행대법회의 첫 법주로 법상에 오른 해인총림 율주 종진 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동화사 통일전을 울렸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좋은 행위를 익히고, 좋은 습관 좋은 성격을 형성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 계율입니다. 곧 부처님의 삶으로 나아가는 지침이 되는 내용을 계라 하고, 잘못이 있을 때 벌을 받고 다시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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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 부처님 삶을 배우세요. 많지도 않습니다. 딱 다섯 가지만 배워 실천하면 됩니다.” 오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계율이란 나를 속박하는 틀로만 여겼는데 행복하기 위해 부처님 삶을 배우는 것이라는 스님의 법문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조수정·34·대구시 남구)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계율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덧 사라지고 등산복 차림의 한 거사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돋보기를 낀 한 노보살은 열심히 뭔가를 받아 적고 있다.
“아는 건 간단합니다. 그러나 오래 익히고 몸에 배지 않으면 제 것이 되지 않습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아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실천하면 될까? 대중들이 난감해하는 것을 눈치 챈 듯 스님은 두 가지 숙제를 제시했다.
“불교의 기본 예법인 합장부터 바로 하세요. 신발도 반듯하게 벗어 놓으세요. 이제 실천만 남았습니다.” 불자들의 얼굴엔 새로운 다짐이 역력하다.
서울 부산 등서 KTX 타고 참석
동화사 계율수행대법회는 계율 수행을 주제로 한 최초의 대중 법회다. 한국불교 최고의 율사스님들이 법주로 나선다. 수행의 기본인 계율 정신을 되살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난제들을 풀어보자는 점에서 이미 불교계는 물론 사회의 주목을 받은 계율수행대법회는 대구의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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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최연소 참가자는 4개월 된 갓난 아기. 아기 엄마 김혜영(29·칠곡)씨는 “어머니 따라 아기를 업고 법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동래 전법사에서 온 비구니스님은 “이번 법회를 계기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새롭게 정립되길 바란다”며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법문에 귀를 기울였다.
폭염 속 4시간 동안 미동도 않고 경청
입제식과 종진 스님의 법문, 또 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과 동국대 이자랑 선생의 논찬과 답변으로 무려 4시간 가까이 이어진 법회였다. 찜통 더위에 1500여 불자들의 열기가 더했지만 참석자들은 시종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이사이 두 번의 휴식시간, 자리를 뜰 법도 하건만 대중들은 다시 통일기원대전을 가득 메우며 법회에 집중했다. 스님의 법문을 놓칠세라 열심히 메모를 하는가 하면 논찬문과 계율법회 안내서 등을 꼼꼼히 읽었다.
오후 4시를 넘기자 팔공산 자락에서 때 아닌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오후 6시30분 법회가 끝나자마자 대구에서는 보기드문 소나기가 퍼부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선 불자들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일까? 법주스님의 법문이 시원해서일까?
대구 동화사/글=배지선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이모저모>
# 오늘 법회는 최고! ‘3000만원 짜리(?)’ 법회
박배의(대구불교대학 48학번) 거사는 “접수비가 3만원인데 오늘 법회는 3천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법회였다”고 말했다. 박 거사는 “계율의 의미부터 부처님 당시 계율의 성립과정까지 쉽게 풀어주신 스님을 뵌 적이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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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입제식에는 시각장애인들의 모임인 대광맹인불자회 10여명이 봉사자에 의지하거나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시선을 모았다. 맹인불자회 장재근(53) 거사와 정옥숙(61) 보살은 “계율법회에 참석하고 싶어 자원봉사자들에게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14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원봉사자 정만월(80·대구) 보살은 “맹인불자들은 특정법회에 가고싶어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번 법회에는 관심이 많고, 열번 모두 참석할 뜻도 비쳤다”고 말했다.
# 종진 스님 “법회 10회 전부 참석하겠다”
이번 계율수행대법회의 첫 번째 법주로 나선 종진 스님(해인총림 율주)은 계율에 대한 일반 대중의 큰 관심에 적잖이 고무된 표정이었다. 법회를 마친 스님은 “이번 계율수행대법회가, 평소 계율에 대한 관심 부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며 “앞으로 진행될 아홉번의 법회에 모두 참석하겠다”고 밝혀 주위의 박수를 받았다.
# 서울 향천선원 신도들 법회참가
정토사 만일염불회 서울분원인 향천선원 유광옥 보살 등 신도들도 KTX 고속열차를 타고 아침 일찍 동화사를 찾았다.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향천선원은 염불수행 전문도량. 평소에도 향천선원 신도들은 공부를 위해 전국의 유명법회를 찾아 정진한다고. 유 보살은 “이번 법회가 평소 궁금했던 계율문제를 되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 됐다”며 반가워했다.
# 출가, 재가자 구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은 “계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대중들과 함께 법회의 자리를 갖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재가자와 출가자에게 설한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출·재가자가 모두 동참하는 계율법회에 다소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재가불자들을 위한 법회와 출가 수행자를 위한 법회가 따로 구분되어 순차적으로 열린다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 기본부터 알고 禪공부했으면
최종수(51·대구동구 신천동) 거사는 “요즘 선수행 붐이 일고 있는데, 기초도 모르는 채 무모하게 덤비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하고 “선을 하기 전에 불자로서 지킬 수 있는 것부터 지킬 줄 아는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 이번 계율법회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