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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하면서도 비수같은 한 마디가 날아왔다.
“조주(趙州)는 인명(人名)이 아니라 지명(地名)인데요.”
“??? (으~ 쥐구멍이 어디야)”
음~ 그건 그렇고, 조주 스님은 왜 그렇게 오래 살았을까? 너무 건강하여 살다보니 ‘고불(古佛)’ 소리를 들어가며 120살이 된 것일까? 아니면 오래 살아야만 할 이유가 있었기에 장수원력을 세운 것일까?
아마 모르긴 해도 뭔가 그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조주땅 동관음원에 80살이 되던 해 들어가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후 40년을 한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한 자리에서 30년을 살았다는 선사는 더러 보이지만 40년 역시 흔한 일은 아니다.
이래저래 깨지기 어려운 2관왕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 그 이유를 이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진나라 예주 방림리에 두 동자가 함께 발심하여 집을 나와 임야사로 출가를 했다. 임야사(林野寺)는 그 이름으로 보아 말이 절이지 그냥 지붕도 없는 들판을 의미한다. 혈사(穴寺)가 절이 아니라 동굴이듯이. 들판도 바위굴도 수행자가 머물면 바로 절이 된다. 그야말로 두타행 그 자체였다는 의미이다.
한 아이의 이름은 종심(從諗 뒷날 조주 선사)이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달정이었다. 이 두 동자가 태양산 서봉 아래에서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토굴을 만들고서 정진을 했다.
견성해서 많은 중생을 교화하길 발원하고 고락을 같이 나누면서 목숨을 걸고 수도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달정은 도중에 병이 나서 죽고 만다. 도반을 잃은 종심의 슬픔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종심은 그 뒤 남전 선사를 만났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의 법을 잇게 된다.
그리하여 조주땅 동관음원에서 머물면서 달정이 세상에 다시 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임야사가 있던 곳과 동관음원 위치의 지리적 관계성은 불민한 탓에 살피지는 못했다.
120살까지 산 것이 그냥 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를 기다리고도 남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달정은 환생하였고 그리고 또 출가를 하였다. 수행자는 수행자로 다시 오기 마련인가 보다. 업을 그렇게 지었기 때문이다. 법명은 ‘문원’이라고 했다.
하루는 젊은 문원 스님이 느닷없이 개를 안고 와서 연로한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이에 조주 스님이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없다.”
이 말을 듣고서 문원 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물론〈조주록>의 내용은 여기서 끝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숙명통도 함께 열렸다. 흰머리칼의 늙은 방장스님은 그 옛날 토굴에서 함께 정진하던 도반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껴안고 서로 기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군더더기라서 빼버렸나 보다.
이런 선문답은 어떨까?
문:조주 선사께서 오래오래 사신 까닭은?
답:‘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만들기 위해서.
‘퍽!(몽둥이 날아오는 소리)’ 씰데없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