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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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만 하고 있지 않나요
[행복을 찾아주는 부처님말씀]기도에서 수행으로


한 비구니 사찰에 여자 신자 5백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노년에서 아주 젊은 여성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하는 일과 집안 배경이 다양하였습니다.

여인들은 한 달에 6일 절에 찾아왔습니다. 6재일(齋日)이라 하여 이 날 만큼은 세속의 잡다한 일도 잠시 쉬고 화려한 치장도 삼가며 수행자처럼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신자들의 풍습이었던 것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현대불교자료사진.
여인들은 8계를 지키며 지냈는데, 8계란 살생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 라고 하는 5계에 꽃이나 향을 뿌리고 장식하거나 떠들썩한 흥밋거리에 정신이 팔려 다니지 말라, 높고 넓고 잘 꾸며진 침상에 앉거나 눕지 말라, 때 아닌 적에 먹지 말라 라는 세 가지 조항이 첨가된 것입니다.

이 절을 창건한 사람은 위사카. 매우 독실한 신앙을 갖고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소에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떠들썩하게 웃고 놀고 집안을 자랑하던 여인들이 이렇게 재일(齋日)에 절에 와서는 철저하게 8계를 지키며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에게 일일이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무슨 이유에서 절에 와서 8계를 받고 재일을 지키십니까?”

그녀의 질문을 받은 5백 명의 여인은 제각각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노년의 여성 불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다음 천상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중년 여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자꾸만 늙어 가는데 남편은 젊은 여자에게 눈길을 줍니다. 제발 내 남편이 젊은 여자에게 한눈팔지 말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갓 결혼한 젊은 여자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어서 빨리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딸보다 아들이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젊디젊은 여인들은 말했습니다.
“빨리 제 짝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인물도 좋고 정도 많고 돈도 많은 남자를 만나 하루 빨리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절에 와서 이렇게 기도를 올립니다.”

5백 명의 여인들은 제각각의 대답을 하였지만 대체로 연령대별로 대답은 엇비슷하였습니다. 위사카는 그 여인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서 여인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들려 드렸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사카여,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은 중생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대사(一大事)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늙고, 시들고, 결국 죽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중생은 이 고통스러운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려고 발원하여 힘써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생사윤회의 밧줄로 자신을 꽁꽁 묶고자 애쓰고 있구나.”(<법구경> 거해스님 편역, 고려원, 404~405쪽)
“미령아, 나를 따라서 오직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겠느냐?”

저에게 불교라는 엄청난 세계를 열어주신 고익진 선생님께서 20대 중반에 막 들어선 저에게 나직하게 물으셨습니다.

몇몇 법우들과 법회가 끝난 뒤 선생님 방에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권유를 받은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그렇게 하겠노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 입에서는 전혀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제 아버지가 결코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 다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선생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사실 2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세속의 일들을 접기에 매우 아까운 나이였습니다. 그때 저는 연애도 막 시작하였습니다. 자식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애착을 보이신 아버지를 핑계 댔지만 사실 저는 세상의 사랑과 유혹거리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셨던 것만 기억에 남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아버지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좀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제 머리카락에도 흰 빛이 서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수행에 두 발 다 담그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위사카에게 대답한 여인들처럼 저는 아직도 생사윤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에서 나의 진실한 삶을 위한 수행으로 거듭 나야 할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2005-08-08 오후 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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