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조선시대 ⑮
조선 후기에도 차의 열기는 식지 않았으니, 다세를 부과하는 지역이 36개 군현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는 청나라 못지않게 일본과의 교류가 많았고, 그들도 우리 문화에 대한 선망도가 높았다. 그래서 일본어 통역이 필요해 일본말 교본을 출간하기도 했고, 실사구시 학풍은 생활과 직결된 문제와 관해 많은 노력이 이뤄졌다. 그 한 예가 남자 다모의 출현이며, 이제까지의 다모 소임과는 다른 직무도 그들에게 주어졌다.
청나라는 국내적으로 다마사의 활동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도 많이 노력해 중국차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은 우치(宇治)에서 가루차를 만들기 시작해 일본 가루차 시대를 열었다. 한편 중국에서 도일한 스님 은원(隱元)에 의해 잎차 마시는 방법이 전해지고, 임란 때 납치해 간 한국인에 의해 덖음차 문화가 생겨나게 됐다.
① 종우: 대마주태수로 우리의 예조참의에게 외교문서와 함께 점다행주(點茶行廚) 한 벌을 보냈다.
② 당시 36개 군현에 다세를 부과했다.
③ 일본 사신 평성태가 동래부에 이르렀으니, 다례가 행해졌다.
④ 임년헌의 교거쇄편(郊居瑣編)에 남자 다모 얘기가 실렸다.
⑤ 복평군이 주야로 차를 마셨다는 기록으로 당시 왕가의 차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⑥ 강우성이 쓴 일본말 교본
⑦ 설암선사(1651~1706): 대둔사 오대 대종사로 <설암잡저(雪巖雜著)>에 다시 십여 편이 전한다.
⑧ 청의 노대여가 찬술한 책으로 절동(浙東)의 다사(茶史) 및 다법을 기록했다.
⑨ 황종희(1610~1695): 명ㆍ청 시대 학자로 그의 <광려유록>에 나오는 ‘여요폭포차(餘姚瀑布茶)’는 고대 명차다.
⑩ 포송령(1640~1715): <요재지이>에서 소평초(小萍草)의 독을 찻잎으로 시험하는 얘기를 썼다.
풍가빈: 차학자로 대나무와 바위그림에 능했고 차를 좋아해 <개다전(岕茶箋)>을 썼다.
주여규: 개차를 좋아해 어려서부터 춘추로 나개에 120여회나 들어갔다.
장영(1637~1708): 육안, 무이, 나개 등의 차를 즐겨 마신 차인이다.
⑪ 청대 양청원이 쓴 책으로 포다(泡茶)에 관해 썼다.
⑫ <개옹다사(介翁茶史)>는 유원장이 쓴 중국 다사로,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⑬ 서회가 쓴 저술로 다사를 보유한 내용이다.
⑭ 고전직부(1544~1615): 다탕(茶湯)의 명인이다. 수길의 사후에 덕천가(德川家)의 다도사범이 되어 장군풍의 다도를 일으켰다. 직부류(織部流)의 시조가 된다.
<한국>
1661 삼남일대 기민(飢民) 전염병 만연
1662 대마도 종의진(宗義眞) ①
@ 다세 부과지역(36개군) ②
1665 다시(茶時)
1668 하멜의 <조선표류조난기>
1671 평성태(平成太) ③
@ 남자 다모(茶母) ④
1675 복평군(福平君)의 음다 ⑤
첩해신어 ⑥
1677 경상도 대동법 시행
1678 상평통보 주조
왜관 신관사 완성
@ 설암(雪巖) 선사 ⑦
<중국>
1600 <구강일지(甌江逸志)> ⑧
1661 강희제 즉위
@ 황종희(黃宗羲) ⑨
1665 운남 북쪽에 승주다마사 증설
1669 동인도 회사 차 구입
@ 포송령(蒲松齡) 풍가빈(馮可賓) 주여규(朱汝圭) 장영(張英) ⑩
1674 <정화기> ⑪
1677 <다사(茶史)> ⑫
@ <다사보(茶史補)> ⑬
<일본>
1662 토좌(土佐) 곳곳에 차나무를 심다
@ 고전직부의 활동 ⑭
1673 유구(琉球)에 차밭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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