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광복 60주년을 뜻깊게 맞는 교수 불화가가 있다. 익산 원광대학교 회화문화재보존수복연구실에서 450여년전 일본에 강탈당한 성보를 꼼꼼하게 재현해 내고 있는 김범수 교수(원광대 회화문화재보존수복학과 범해회화문화재연구소장)다.
원광대를 찾은 8월1일 날씨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한ㆍ일 관계처럼 후텁지근했다. 연구실에는 불화가 김범수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한창 불화작업 삼매에 빠져 있었다. 특이하다면 커다란 사진을 여러 장 놓고 사진속의 장면을 화면에 옮기는 것.
“지난 5월, 일본 현지에서 조사하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림은 머릿속에 생생하지만 부분부분 확대사진을 보며 그리고 검증하고 있습니다.”
밑그림을 마치고 채색을 준비 중인 김범수 교수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있는 우리 불화를 현상모사 중이다”고 설명했다.
불화는 도갑사 대웅전에 모셔졌던 ‘관세음보살 32응신도’. 조선 명종 5년(1550)에 그려진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화기에 따르면 “인종(仁宗)비인 공의(恭懿)대비가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자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으며, 영광 도갑사 금당에 영원히 봉안하도록 보낸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봉안된지 50년도 되지 않아 정유재란 때 일본에 유출되고 만다. 이후 450년간 도갑사가 아닌 일본 지은원(知恩院ㆍ일본 정토종 종무원)에 소장되었고, 앞으로도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불화를 전공한 김 교수는 세계 회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고려불화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불화들이 소장처의 협조 없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현상모사하여 ‘또 하나의 원본’을 만들 것을 다짐했다. 김 교수는 20여 년 전, 재료와 기법을 제대로 익히려 일본으로 건너가 석채(石彩)를 공부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중인 ‘모나리자’도 모사되어 해외 전시에는 원본을 대신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본 금륭사 벽화도 원본은 화재로 소실되고 모사된 것입니다”
국내 유일의 회화문화재보존수복학과 주임 교수로 후학들과 함께 문화재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김 교수는 ‘문화재를 모사하여 원본과 함께 대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선진국일수록 모사기법이 발전하여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모사에는 현상모사와 복원모사가 있다. 현상모사는 원본의 현재상태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복원모사는 원본이 제작될 당시 그대로 모사하는 것. 김 교수가 복원하는 ‘관세음 32응신도’는 현상모사이다. 밑그림이 끝난 화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원본의 비단천 실오라기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나타나있다. 향으로 그을린 윗부분은 약간 어둡게 채색되어 있고, 군데군데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박리된 곳의 가루분까지 사실적이다.
본격적인 채색을 위해 석채 병들을 점검하던 김 교수는 “어쩌면 이 불화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뻔 했다”며 불화에 얽힌 비화 하나를 들려준다.
1993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일본에 유출된 고려 불화들이 전시되었다. 조선 초기 불화로 회화사적 가치가 높은 ‘도갑사 관세음 32응신도’도 함께 초대됐다. 전시가 끝나갈 무렵 ‘관세음 32응신도’를 일본으로 돌려보내지 말자는 여론이 일어났다. 일본이 강탈해 갔기 때문에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 일본 지은원은 ‘화재로 소실됐다’ ‘도난당했다’며 일반에 공개하지 않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일본에 유출된 한국불화를 주목하고 있던 김 교수는 훼손되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하고 ‘현상모사’를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하루빨리 복원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은 ‘관세음 32응신도’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 |||
| ||||
![]() | ![]() |
우연히 동료 양은용 교수(원광대)의 은사인 미즈타니 고쇼(水谷幸正) 박사가 일본 정토종의 종무원장인 것을 확인하고 양 교수와 함께 협조를 요청했다. 미즈타니 고쇼 박사도 흔쾌히 복원작업을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전남도와 영암군이 지원키로 하면서 복원작업은 본격화됐다. 지난 5월 8일부터 12일까지 분야별로 16명의 전문가가 일본 현지로 떠나 색분해, 색조견표 제작, 사진 촬영 등을 마쳤다.
“우리나라 불화나 단청은 구한말 이전까지도 석채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8세기부터 전해온 화학안료에 밀려 석채기법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현상모사는 문화재 복원뿐 아니라 전통 석채기법을 찾고 계승한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20여년 석채로 작업을 하다보니 이제야 손끝에 감이 온다”는 김 교수는 그동안 백양사 각진국사, 선암사 조사전 7대조사를 비롯해 경봉, 탄성, 만암 스님 등 큰스님들의 진영을 석채기법으로 제작했다.
![]() | ![]() | |||
| ||||
![]() | ![]() |
‘관세음 32응신도’는 현상복원이 끝나는 오는 11월경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 후 도갑사 대웅전에 봉안된다. <법화경 보문품>에 설해진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이 불화는 종교뿐 아니라 조선 초기 산수와 다양한 인물을 함께 엿볼 수 있어 열띤 학술대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소중한 성보가 해외로 유출돼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반환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현상모사로라도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또 하나의 원본을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어느 여름날, ‘관세음 32응신도’ 현상모사가 한창인 연구실은 두 나라가 더불어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관세음 응신도를 연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