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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관계자들의 무관심 속에 일본식 조경이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의 전통 사찰조경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웅전 앞마당 정원 조성 △가이스카 향나무, 갸라목, 노무라단풍 등의 일본품종 식재 및 가위로 다듬기(剪定) △일본식 연못 및 자갈마당 조성 등 대표적인 일본식 조경의 예로 꼽히는 풍경들은 이제 전국 어느 사찰에 가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숙한 광경이 돼버렸다. 그야말로 어느 것이 우리 것이고, 일본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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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주변에서 식물이 도입되는 유일한 곳은 화계(花階)다. 화계란 건물 터를 고를 때 옹벽과 화단을 겸한 기능을 갖는 구조물로, 건물과 건물, 건물과 자연을 연결하는 전이(轉移)공간으로서 나타난다. 화계에 주로 심은 것은 매화 산수유 목단 작약 등 유실수나 약초류로서, 관상수를 심지는 않았다.
하물며 가위질로 나무를 다듬는 경우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사찰은 예로부터 순수한 자연을 부처님의 세계로 이해하고, 자연과의 동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 없이 탁 트인 정갈한 대웅전 마당은 대중이 예불을 올리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반면 일본의 경우 상징적인 조형물을 통해 자연이나 정토를 사찰 안에 압축적으로 표현할 정도로 상징주의적이고 인공적인 조경이 발전함으로써 한국사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딴다. 가장 극단적인 것이 고산수(枯山水)정원이다.
네모난 정원에 흰 모래를 깔고, 크고 작은 돌을 배치해 산수를 표현하고 우주를 상징한 고산수정원을 통해 선적(禪的) 경지까지도 드러내고자 했을 정도다.
연못의 경우에도 일본식은 한국 전통양식과 상이하다. 한국의 전통 연못이 원형이나 장방형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 연못은 부정형(不定形)의 곡선을 이루고 있어 확연히 구별된다. 또 일본식 연못 수면이 지면에 가까운 반면, 한국 연못의 수면은 지면과 깊이에 차이를 보인다. 또 연못에 분수를 두는 것도 전통적인 방식과 거리가 멀다.
마당에 자갈을 까는 것도 일본의 영향이다. 자갈마당은 일본 막부시대 쇼군의 집에 닌자가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깔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번지고 있는 일본식 조경은 한국의 고유한 자연과 건축,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미적 가치를 해치고, 한국사찰조경의 전통을 왜곡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반적으로 전통조경이 잘 보존되고 있는 사찰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부분적으로 전통미가 남아있어서, 경주 불국사와 영주 부석사, 남양주 봉선사, 화성 용주사의 석단, 남양주 봉선사의 화계가 옛 멋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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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개선 방법으로 정 교수는 △조경의 중요성에 대한 사찰관계자의 인식 제고 △주변정비사업시에 조경 개선 △조경시 전문가의 자문 또는 감리 절차 의무화 △조경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실시 등을 제안했다.
홍광표 동국대 교수(조경학과·사찰조경연구소장)는 “우리 전통 조경을 지키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개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우리 사찰 특성에 맞는 정갈한 아름다움을 속히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