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스웰 교수(미국 UCLA) 등과 함께 서구 불교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도날드 로페즈 교수(미국 미시간대)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7월 15일 고려대에서 열린 국제한국학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로페즈 교수는 하루 앞선 14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에서 ‘서구 불교학 연구: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에서 로페즈 교수는 서구에서 불교가 학문으로 성립·발전하는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불교학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앞으로 불교학의 발전 방향. 로페즈 교수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엘리트적 학문 전통에 치중해 아비달마, 중관, 논리학적 전통이 주로 연구됐으며, 칸트·비트겐슈타인과 불교가 비교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데리다와 비교되기도 하고 있다”고 근래의 연구흐름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불교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 ||||
이와 관련 로페즈 교수는 근대의 통신·교통의 발달로 인해 형성되는 범아시아적 불교 정체성이나, 문화 교환의 네트워크, 또는 유럽 초기 불교학자들의 사회적 배경이나 철학적 관심,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 유럽 불교를 조망하는 것 등을 흥미로운 연구 주제 예로 제시했다.
로페즈 교수는 불교학에 임하는 연구자의 자세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연도를 결정하기 위한 질문을 예로 들며, “왜 이 질문이 우리에게 중요한지, 해답을 찾는 우리의 목적이 과거 승려들의 것과 같은지 등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청중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다음은 그 요약.
Q. 불교공부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A. 대학생이던 70년대는 서구문명에 대한 회의와 함께 불교가 융성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불교에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며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영어로 된 문헌이 별로 없어서 산스크리트·티베트어를 공부해야 했다. 처음에는 깨닫고 싶다는 생각에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불교학을 공부하는 학자에 머물고 말았다.
Q. 포스트모던적인 불교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나 자신은 어디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한 바 없다. 그 점에서 내 연구를 포스트모던하다고 말하는 것은 억울한 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문헌학 중심의 텍스트 읽기가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했고, 전통적인 읽기 방식으로 간주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Q. Buddhism in Practice를 보면 경전상의 불교와 실제 신행되는 불교 사이에 간극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경전들은 대개 비구의 이야기다. 보통사람의 관심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다 읽어도 실생활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해답을 얻기 어렵다. 이 점에서 아무리 경전을 읽어도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말할 수 있다.
Q. 뷰르노프 등 유럽 불교의 초창기 학자들과 그들의 저술에 대해 평가해달라
A. 지금 뷰르노프의 <인도불교사>를 번역중에 있다. 그 이유는 그 저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그가 살았던 집을 순례하듯 방문하기도 했는데, 88가지 문헌을 비교하며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오리엔탈리스트로 비판하는 견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Q. 비판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비판불교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된 불교계의 자기반성에서 비롯됐다. 경전을 읽어보고 불설과 방편을 갈라내는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일관성이 결여돼 있고, 철학적으로 불합리한 체계로 보인다.
Q. 참여불교에 대한 관심이 서구에서는 어느 정도인가
A. 참여불교보다는 윤리학이 학계 주된 흐름이다. 30여 년 전에 중관이 유행했다면 요즘은 불교의 사회사적 연구가 활발한 편이다.
| ||||
A. 내가 불자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다. 그러데 대답이 쉽지 않다. 만약 아니라고 말하면, 다만 직업으로서 불교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질문에는 질문자의 의도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대답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불교 전통이 결여된 서구에 살고있는 내가 과연 불자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1978년 달라이라마를 만나 보살서원을 하며, 하루 6번씩 기도하고 명상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실천이 쉽지 않았다. 1984년 다시 달라이라마를 만났을 때 실천이 어렵다고 말했더니, 그는 이해한다고 답했다. 그는 “석탄이 붉은 빛을 내비치는 정도로만 유지하면, 언젠가 인연을 만나 활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것이 큰 위안이 됐다.
달리 생각하면 불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불교서적을 잃고 글을 써낼 수 없었을 것이다.
Q. 티베트 불교의 전망은 어떤가
A. 서구에서 티베트 불교는 달라이 라마의 인품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크게 융성할 수 있었다. 그는 영어로 간단한 가르침을 설하는데, 그 감동은 대단히 크다. 달라이 라마가 오래 산다면 티베트 불교는 더욱 융성해질 것이다.
◇로페즈 교수는
미시간대학교 불교 및 티베트학 석좌교수(Carl W. Belser Professor of Buddhist and Tibetan Studies)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인도 대승불교와 티베트불교 분야 권위자로 서구에 영향력이 큰 불교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로 A Study of Svatantrika, Elaborations on Emptiness, Uses of the Heart Sutra, Prisoners of Shangri-La, Tibetan Buddhism and the West and The Story of Buddhism, 등이 있다.